요란한 굉음을 일으키며 오토바이 한 대가 경기도의 한 골프장에 들어선다. 정문을 지키던 경비원이 놀란 표정으로 다가온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공치러 왔어요.” 이 한마디와 함께 오토바이의 주인은 클럽하우스를 향해 유유히 사라진다.
영화 속 장면이 아니다. 얼마 전 일어난 실제 상황이다. 세상에, 오토바이를 타고 골프장에 가다니…. 일본 골프용품 브리지스톤을 수입 판매하는 석교상사 이민기 사장(50)이 그 주인공이다.
하늘의 뜻을 안다는 나이. 하지만 외모만 봐서는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다. 덥수룩한 수염과 염색한 머리, 귀걸이에 청바지.
18년째 회사를 이끌고 있는 그의 별명은 ‘필드의 자유인.’ 4년 전부터 타기 시작한 모터사이클 할리 데이비슨 마니아다. 주말에는 일상에서 벗어나 속도감을 즐기며 할리 데이비슨 동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오토바이로 골프장에 다닌 적도 10여차례. 캐디백은 미리 동반자의 차에 실어둔다. “골프장이 대개 바이크 타기 좋은 곳에 있더군요. 구불구불한 도로를 달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확 풀립니다.”
정장에 넥타이 차림의 CEO였던 그는 오토바이와 인연을 맺으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했다.
“40대 후반의 어느 날, 문득 뭔가를 잃어버린 채 틀에 박힌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그러다 우연히 무리지어 달리는 바이크 행렬을 보면서 저거다 싶었습니다.”
‘두두둥’ 하는 배기음과 진동을 느끼다보면 살아있는 생명체와 함께 호흡하는 기분이라는 것. 오토바이를 타면서 체력과 자신감을 되찾을 수 있었고 일도 더 적극적으로 하게 됐다. 외모도 그래서 바꿨다고.
고속질주하는 오토바이처럼 이 사장은 골프 업계에서도 선구자. 국내 최초로 토너먼트 서비스카를 운영해 각종 대회 때마다 선수들에게 클럽 수리, 볼 무상 제공 등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올해에는 골프업계 상황이 어려운데도 한국 프로골프 3부투어의 타이틀 스폰서로 나섰다. 투어스테이지 3부 투어는 대회 출전에 목마른 세미프로, 티칭프로는 물론 대학생 아마추어들의 등용문. 내년 2월에는 멀리 태국에서 개막전을 치른다. 스폰서 입장에서 생색도 내고 싶겠지만 문호를 활짝 열기 위해 초청선수도 아예 없앴다.
“선수 육성만큼 보람 있고 의미 있는 일은 없습니다. 대회를 많이 열어야 합니다. 3부 투어 출신으로 큰 선수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해에는 골프와 할리 데이비슨을 연계한 사업도 구상하고 있다는 이 사장은 사진 촬영을 마친 뒤 “시동 건 김에 동네 한 바퀴 돌고 오겠다”며 ‘애마’에 성큼 올라탔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 그의 머리카락이 자유롭게 흩날렸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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