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오리온스 김진 감독 기발한 ‘카드 용병술’

  • 입력 2003년 12월 19일 18시 13분


8가지 색깔의 카드를 이용한 작전 지시로 눈길을 끌고 있는 오리온스의 김진 감독. 경기 도중 카드로 약속된 공격을 선수들에게 주문하는 김 감독의 모습을 합성사진으로 구성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8가지 색깔의 카드를 이용한 작전 지시로 눈길을 끌고 있는 오리온스의 김진 감독. 경기 도중 카드로 약속된 공격을 선수들에게 주문하는 김 감독의 모습을 합성사진으로 구성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프로농구 오리온스의 경기에서는 종종 희한한 장면이 연출된다. 경기 도중 오리온스 벤치에서 김진 감독(42)이 벌떡 일어나 카드를 뽑아 흔든다. 세심한 관중이라면 한번쯤 보았을 장면이다.

더욱 절묘한 것은 김 감독이 카드를 뽑고 나면 선수들의 움직임이 사뭇 달라진다는 것. 선수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 뛰어다니며 공격 형태가 크게 변화한다. 심판도 아닌 감독이 카드를 뽑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감독은 서로 다른 색상으로 된 8장의 카드를 양복 윗도리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간직하고 다닌다. 이 카드야말로 김 감독의 ‘작전 내공’이 들어 있는 비방. 가로 8cm, 세로 20cm 정도의 사이즈에 깔끔하게 코팅을 한 이 카드는 김 감독이 공을 들여 직접 제작한 것.

그는 “체육관 소음이 심할 때 목소리만으로 작전을 전달하는 데 한계가 있고 애먹을 때가 많았다. 카드를 쓰면 굳이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사용하게 됐다”고 밝혔다.

지난 시즌 빨강 노랑 검정 3가지로 시작한 카드는 5가지를 거쳐 올 시즌 8장으로 늘어났다. 시각적으로 눈에 잘 들어오는 강렬한 색깔을 골랐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

‘팔색조 카드’의 효과는 어떨까.

“대단히 만족스럽습니다. 적시에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다 보니 우왕좌왕하다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없어졌습니다.”

예전에는 주로 손가락 신호나 약속된 단어를 통해 작전을 말하다 보니 선수들이 놓칠 때가 있었다는 얘기. 경기 막판 접전 상황에선 다만 몇 초만 그냥 흘려보내도 치명적이라는 것.

오리온스의 간판스타 김병철은 “시끄러울 때 감독님의 의중을 빨리빨리 알아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김 감독이 경기 도중 빨강색 카드를 빼 치켜들면 선수들은 일제히 “레드, 레드”를 외치며 약속된 공격을 펼친다. 이를 위해 시즌 전 색깔에 따라 서로 다른 공격 패턴을 수도 없이 반복 훈련했다고.

야구에서 ‘사인 훔치기’가 있듯 카드 패턴도 장기레이스에서 자주 써먹다 보면 상대팀에 노출될 우려가 있어 라운드마다 변화를 주고 있다.

오리온스는 30∼40가지의 다양한 공격 패턴으로 19일 현재 단독선두 TG삼보에 1경기차로 뒤진 공동 2위에 올라 3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을 노리고 있다.

이 때문에 김 감독의 ‘8색 카드’는 다른 팀에는 ‘공포의 카드’로 불린다.

프로농구 감독 지시-스타일
맹장김태환(LG) 김동광(삼성) 정덕화(SBS)다혈질. 신상필벌이 분명. 심판에 대한 항의도 서슴지 않음.
덕장김진(오리온스) 이상윤(SK) 추일승(KTF)부드러운 이미지. 선수들을 다그치기보다는 달래는 스타일. 무표정.
지장신선우(KCC) 전창진(TG삼보) 유재학(전자랜드)강약의 조화. 상황에 따른 적절한 대처. 여우형.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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