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 영하 12.2℃
풍속 : 초속 2m 미만(거의 무풍)
운행시간 : 08:10-19:40 (11시간30분)
운행거리 : 32.3km (누계 :578.4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522.2km
야영위치 : 남위 85도 03분358초 / 서경 80도 56분 210초
고도 : 1,375m / 86도까지 남은 거리: 105.4km
▼남위 85도를 넘다!▼
아침 하늘이 흐리다. 화이트 아웃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은 듯 하나 동쪽 하늘에는 푸른 하늘이 조금 보인다. 어제처럼 발이 빠지는 설원에 박대장은 출발부터 스키를 신는다. 그리고 서둘러 남쪽으로 향한다. 내내 두 시간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걸은 후에야 첫 휴식. "앞쪽의 구름이 심상치 않으니 서둘러 운행해서 거리를 늘리자"는 얘기를 하고는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화이트 아웃에 지칠대로 지쳤던 어제의 운행이 악몽처럼 되살아난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박대장의 뒤만 죽어라 쫓아가는 대원들. 다행히 동쪽 하늘이 열리고 첫 간식시간에는 화이트 아웃 걱정 안 해도 될 정도로 하늘이 맑게 갠다. 비로소 안심이다. 오늘따라 바람이 없다. 이현조 대원이 풍속계를 꺼내들고 바람을 측정하려하나 할 수가 없다.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라도 알아야 풍속계를 갖다댈 텐데 방법이 없다. 풍속은 2mps 미만이라고 합의를 본다. 해가 나타나고 바람이 없자 몸이 달아오른다. 자켓 안으로 땀이 흘러내리고 내의와 방한 옷(power stretch)도 흥건히 땀으로 젖는다. 오후 2시 휴식시간에 이치상 대원이 오버 자켓을 벗고 걷는다. 운행 재개 10여분 후엔 이현조 대원이 썰매를 세우고 자켓을 벗는다. 얼마 후에는 강철원 대원이 벗고, 오희준 대원과 박대장이 거의 동시에 운행을 멈추고 벗는다. 대원 모두 벗었다. 오버자켓에서 모두 해방되었다. 벙어리장갑도 벗었다. 파일 장갑도 벗는다. 얇은 파일 장갑만을 낀 채 운행을 한다. 그래도 춥지 않다. 4시 휴식 시간에 이현조 대원이 정밀한 디지털 온도계를 꺼내 온도를 잰다. 영하 11.1도 까지 내려가는 것을 보고 온도계를 도로 넣는다. 기온은 낮은데 춥지 않다. 박대장은 휴식을 취하는 대원들에게 밝은 표정으로 한마디 한다.
"드디어 85도를 넘었다"
대원들의 표정도 환하게 밝아진다. 담배를 피우던 오희준 대원은 잠깐 동안 남극의 눈으로 첫 세수를 한다. 얼굴이 깨끗해져 보인다. 거기에 이만 닦으면 금상첨화 일 텐데.
출발 때부터 우측으로 산들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산 옆에 저장소가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서포트를 받는 팀들도 저장소 근처가 서포트 지점이다. 남극점에 도착하면 경비행기(트윈 오터)는 저장소에 내려서 연료를 보충하고 남극점으로 간다. 돌아 올 때도 마찬가지로 연료를 보충하기 위해 내려앉는다. 패트리어트 힐과 남극점의 중간 지점인 남위 85도 부근에 찾기 쉽도록 산 옆에 저장소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오늘 운행은 더운 날씨에 (-11도) 발까지 완벽하게 푹푹 빠져서 대원들 모두 박대장처럼 스키를 꺼내 신었다. 이치상 대원을 빼고는 얼마 후 스키를 벗는다. 아마도 아직 썰매의 무게를 스키가 감당하기엔 벅찬 모양이다. 강철원 대원은 발이 빠지는 것보다 스키가 나은 모양인지 다시 스키를 꺼내 신는다. 외국팀들도 이구동성으로 스키가 도보보다 훨씬 빠르다고 했다. 맞는 얘기다. 다만 썰매의 무게가 적정 수준 일 때의 얘기이다. 걷는 속도가 같다면 스키를 신을 경우 발이 눈에 빠지지 않고 보폭을 가능한 최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스키가 유리한 것은 당연하다. 며칠 후면 썰매무게가 가벼워 질 것(식량 연료가 줄기 때문)이고 그때는 대원 모두 스키운행이 가능하게 되리라. 그날이 빨리 오기를 고대해 본다. 땀을 많이 흘린 후라서 그런지 대원들 모두 버너 불에 눈이 채 녹기도 전에, 찬물을 마른 논에 물대듯 벌컥벌컥 마셔댄다. 남극의 눈을 녹인 물맛은 기가 막히다. 단맛이 난다. 눈을 그냥 먹어도 달고 얼음을 먹으면 사탕을 깨물어 먹는 것 같다.
또 하나의 내기를 했다. 모의는 박대장이 했다. 남극점 도달 날짜를 맞추는 내기인데 맞추는 사람에게 100달러를 주기로 했다. 이치상 대원 1월 17일, 강철원 대원 12일이라 했다가 14일로 바꾼다. 오희준 대원 16일, 이현조 대원 15일. 박대장도 끼려고 하다가 대원들의 반대로 심판을 맡기로 한다. 서로 제시한 날짜는 달라도 하루빨리 극점에 도달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하나이다. 한국에서 탐험대를 응원하는 분들의 마음처럼.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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