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충남 천안시 성황동 천안초등학교 운동장. 갑자기 떨어진 기온에 바람까지 불어 체감온도는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이리저리 달리며 공을 차는 축구부원 21명. 추위 때문에 볼이 발갛게 얼었지만 그들의 얼굴에선 해맑은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야, 그때는 날개 쪽으로 볼을 빼줘야지.” 송영호 감독(43)의 얼굴에도 웃음이 가득했다. 훈련이라기보다는 즐거운 놀이를 보는 것 같았다.
천안초교 축구부가 다시 ‘꿈’을 차고 있다. 축구부 합숙소 화재로 25명 중 9명이 사망하고 15명이 다치는 끔찍한 참사를 겪은 게 3월 26일. 교육청과 대한축구협회는 사고 직후 팀 해체를 권유했지만 유족들이 반대하고 나섰다. “숨진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다시 창단해야 한다”고 뜻을 모은 것.
이에 따라 9월 천안유소년축구교실에서 취미삼아 축구를 하던 어린이 등 25명을 모아 축구부를 재창단했다. 사고 후 한 가지 달라진 게 있다. 성적에 매달리지 않고 즐기는 축구를 한다는 점. 선수들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도 그래서인가보다.
“참사로 하늘나라에 간 형들과 동생, 친구들의 꿈을 대신 이뤄주고 싶어요.”(홍정택·5학년)
“어린 선수들은 윽박지르면 주눅이 들어 더 못뜁니다. 초등학교 때는 즐겁게 공을 차게 해 꿈을 키워주기만 하면 됩니다.”(송 감독)
참사를 겪은 선수 중에선 홍영동(5학년)만 남아 축구를 계속하고 있다. 참사 때 폐를 다친 그는 아직도 서울 한강성심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다. 아버지 홍달표씨는 “아들이 축구를 계속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마지못해 허락은 했지만 자꾸 마음에 걸린다”며 걱정스러운 표정.
함께 축구를 하던 3명은 브라질로 축구유학을 갔고 4명은 서울로 떠났다. 8명은 정신적 육체적 후유증이 남아 축구를 포기했다. 정한호(5학년)와 이경진(4학년)은 공을 차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몸이 온전치 않은 데다 정신적 충격도 심해 운동장 가기가 무섭다.
참사로 아들(민우)을 잃은 김정욱씨는 요즘도 자주 운동장을 찾아 아들의 모습을 떠올린다. “축구부가 다시 창단돼 하늘에 있는 민우도 기뻐할 겁니다. 자라서 월드스타가 되겠다고 했는데….”
30일 천안초교 운동장에선 숨진 선수들의 추모비 제막식이 열렸다.
천안=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