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 : 영하 18.3℃
풍속 : 초속 4.8m
운행시간 : 08:35-20:10 (11시간35분)
운행거리 :32.6km (누계 :739.5km) /남극까지 남은 거리: 390.8km
야영위치 : 남위 86도 30분 057초 / 서경 81도 39분 114초
고도 : 1,834m / 87도까지 남은 거리:55.6km
▼2003년의 끝자락에서!▼
"甲申年 새해에도 福 많이 받으세요!"
2003년의 마지막 날 운행을 마친 대원들의 표정은 파김치 그것이다.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불어오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장갑을 네다섯 겹으로 꼈는데도 손이 시리다. 출발할 때만해도 바람은 평상시에 부는 정도로만 여겼다. 세찬 바람도 아니었고 아침 기온이 낮은 것도 아니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출발 후 얼마 되지 않아 대원들의 몸이 움츠러드는 게 보인다. 늑대 털모자를 뒤집어쓰고 한기를 잊으려 잰 걸음을 옮긴다. 날이 추워져서 그런지 눈의 표면이 X판이다. 스키는 스키대로 썰매는 썰매대로 눈과의 마찰로 미끄러지지 않으려 한다. 억지로 잡아끌지만 움츠러든 몸마저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작은 보폭으로 아장아장 걸어본다. 첫 휴식을 마치고서 이치상 대원은 스키를 벗어 썰매에 얹는다. 10여 분 후에는 맨 앞의 박대장도 스키를 벗는다. 다른 대원들은 그대로다. 스키를 벗는 것도 귀찮다. 야트막한 언덕을 오른다. 눈 상태가 오만가지다. 폴폴 날리는 분설과 딛는 곳만 빠지는 눈, 딱딱하게 굳은 눈이 뒤섞여 어디를 디뎌야 발이 빠지지 않을지 구분이 되지 않아 박대장과 이치상 대원은 다시 스키를 꺼내 신는다. 발은 빠지지 않지만 속도가 나지 않으니 박대장은 괜한 짜증이다. 단 몇m라도 빨리 나아가고 싶은 마음에서이다.
휴식시간이 즐거운 이유는 잠시 숨을 돌리면서 단 과자와 사탕을 입에 물고 오물거리는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4시간 동안 세 번의 휴식을 각각 5분, 5분, 10분씩 갖는데 긴 휴식시간에는 뜨거운 파시코 음료와 비스켓을 먹는다. 대원들은 탐험 초부터 이 시간을 '파시코 타임'이라 불렀다. 이런 휴식시간조차 오늘은 쉽지가 않다. 스키를 신고 선채로 잠깐 쉬고 그냥 간다. 이유는 간단하다. 춥기 때문이다. 보온병에 뜨겁게 담아온 파시코 음료도 컵에 따라 놓으면 1분을 넘기지 못하고 식는다. 따끈함을 음미하며 가능한 오래도록 컵을 붙들고 있을 시간을 바람이 앗아간다. 찬 것을 입으로 넘기기 싫어서 따라준 음료가 식기 전에 훌쩍 마셔버리는 대원들. 덩달아 휴식시간이 짧아진다. 오후부터는 뒤에 처져 있다가 늦게 도착한 대원들에게는 휴식도 없다. 쉬고 싶으면 떨어지지 말고 열심히 걸으라는 얘기다. 맘만 앞서고 몸은 따라주지 않으니 죽을 맛이다. 이치상 대원은 양발 뒤꿈치가 까진 옆에 다시 물집이 잡혔다. 천천히 걸으면 아픈 것을 계속 느껴야하니 차라리 빨리 걷는다. 오로지 걷는데만 신경을 집중하면 적어도 그 순간은 아픈 것이 잊혀진다. 피로골절로 계속 통증을 호소하면서도 내색을 하지 않는 이현조 대원 역시 똑같다. 아프다고 해 봤자 방법도 없고 치료는 한국 들어가서 해야 할 판이니 아예 눈 질끈 감고 무시 해버린다. 대원들 중 몸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강철원 대원은 옷에 쓸려 양쪽 허벅지 여러 곳에 흉한 상처가 생겼다. 걸을 때마다 아픈 것을 겨우 참으며 대열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다한다. 그러면서도 휴식시간에는 "앞으로 보름만 더 가면 끝이니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며 환하게 웃는 다.
한 달 동안 옷을 갈아입지 못한 대원들의 몸 여기저기에 습진이 생겨 살갗에 보기 흉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특히 발목 부위와 종아리 부분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하루 이틀 쉬어서 될 일도 아니니 모두들 '어서 극점 밟고 돌아가야지'하는 생각뿐이다. 사실이 그렇다. 극점까지 가지 않고는 어떤 방법도 없다. 이제 400km도 남지 않았다. 까짓것 오늘처럼 좋지 않은 상태의 설원도 32km나 걸었는데…. 이렇게 가다보면 목표로 잡은 보름이전에 남극점에 도달할 수 있지 않겠는가.
"아파도, 가려워도, 쓰라려도 참자"
"참고가자"
"기어서라도 가자"
남극점 탐험대원들의 지금심정이 그렇다.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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