뼛속까지 파고드는 전율. 너무나 무서웠다. 잠을 자지 않으려고 온 집안의 불을 환하게 밝혔다. 꼬박 뜬눈으로 지새운 1주일. 20년을 하루같이 매트를 뒹굴며 갈고 닦았던 체력 하나로 버텼다.
그러자 원래부터 좋지 않았던 허리의 통증은 더욱 심해지고 말까지 더듬거렸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다. 무작정 길을 나섰다. 운명처럼 이끌려간 곳이 ‘도솔천국’이란 점집. 그곳엔 30대 초반의 여인이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자신에게 신 내림을 해줄 ‘신(神) 어머니’였다.
하태연(29·전 삼성생명), 아니 하 신관(神官)은 이제부터 무속인으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가 누구인가. 한국을 대표하는 레슬링 경량급의 유망주. 99년 세계선수권에선 은메달을 따냈다. 비록 4강에 머물렀지만 심권호 임대원 박은철 등 ‘죽음의 조’로 불리는 그레코로만형 55kg급의 아테네올림픽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국가대표 1차 선발전에 나간 게 불과 며칠 전인 지난해 11월12일.
다시 번민이 이어졌다. 하지만 그럴수록 몸만 상할 뿐이었다. 결국 직장엔 사표를 내고 운명에 몸을 맡겼다. 그리고 21일 곧바로 내림굿을 받았다. 신기한 것은 보통 3년에서 5년은 돼야 할 수 있다는 작두타기는 물론 웬만한 무속인은 흉내 내기조차 어렵다는 깨진 유리 위를 걷는 것까지 너무나 쉽게 되는 것이었다.
신이 내리는 동안 하 신관은 서울 송파구 방이동 방이상가 내에 ‘태을장군’이란 간판을 내걸으라는 교시까지 받았다.
그러고 보니 까맣게 잊고 있었던 옛 기억도 되살아났다. 중학교 1학년 때 부친이 돌아가시자 진주에서 무속인 생활을 하고 있는 고모가 큰 누나와 자신 중 한 명이 신 내림을 할 팔자라고 했던 것. 1남6녀중 다섯째로 어머니나 다름없었던 큰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내가 해야 될 것을 결국 네가 하게 됐구나”라고 외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하루는 이런 일도 있었다. 야구선수 임수혁이 병실에 누워있는 것을 TV로 보다가 이상한 힘이 전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바로 자신이 모시는 약사부처의 조화였다. 그 길로 바로 병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즉석에서 거절을 당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하 신관은 “아직 사주팔자나 관상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초보”라며 “오직 신이 가르쳐주는 대로 하지 상대를 속이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이 아쉬웠다면 올 초 대리 진급이 예정돼 있던 직장을 그만두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누가 뭐래도 묵묵히 나의 길을 걸어갈 뿐”이라고 덧붙였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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