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 탐험]1월 4일 36일째 "이제 시작이다!"

  • 입력 2004년 1월 6일 22시 03분


4일 강철원 대원. 운행 중의 호흡으로 그늘진 우측어깨부분에 눈꽃이 피었다.
4일 강철원 대원. 운행 중의 호흡으로 그늘진 우측어깨부분에 눈꽃이 피었다.
날씨 : 대체로 맑음

기온 : 영하 20.3℃

풍속 : 초속 3m 미만

운행시간 : 08:55-20:10 (11시간15분)

운행거리 : 27.9km (누계 : 859.6km)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 270.6km

야영위치 : 남위 87°34.658′ / 서경 82°39.941′

고도 : 2,437m / 88도까지 남은 거리: 48.6km

▼이제 시작이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출발준비를 하는데 박대장이 강철원 대원에게 한마디 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은 것은 이해하는데 캠프 도착시간이 너무 늦으면 대원들이 걱정하며 기다리게 되고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얼마나 짜증나겠냐? 오늘부터는 힘들더라도 너무 늦지 않게 신경 써서 걸어라" 강 대원은 "예!"하고 짧게 대답한다. 거기에 이치상 대원이 한마디 더한다. "출발준비 마치는 대로 기다리지 말고 출발하고, 가다가 뒤 처지면 그때부터는 컨디션 조절하며 따라와라" 대답은 마찬가지로 짧게 "예!"로 끝난다. 08:55. 출발준비가 끝나자 박대장이 방향을 잡고 앞서 나가고 대원들이 뒤를 따른다. 어제와 같은 사스트루기의 연속이다. 다른 것이라면 사스트루기의 규모가 더 커졌다는 것. 박대장은 6일 오전 중으로 남위 88도를 넘는다는 계산아래 운행속도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오늘도 그럴 계획이었다. 그러나 사스트루기는 탐험대의 맘과 같지 않게 계속 발목을 붙잡고 늘어진다. 처음 출발부터 오르막이다가 두 시간 후의 첫 휴식이후 약간의 내리막이 있더니 계속 또 언덕이 이어진다. 그냥 보기에도 낮아 보이지 않는 언덕은 차라리 산이다. 남극점의 고도가 2,835m이니 500여m를 더 올라야 한다. 강철원 대원은 계속되는 오르막에 투덜대는 박대장에게 한국에서 자료를 모으던 중 내셔날 지오그라픽에서 본 바로는 남위 88도 전후까지 올라가서 극점까지는 평탄하다고 한다. 대원들 모두 이왕 오를 거라면 빨리 오르자고 속 편하게 생각한다.

맑은 날 박영석 탐험대장이 아름다운 남극을 가로지르고 있다.

커다란 턱을 넘어설 때마다 몸이 멈춰 선다. 썰매가 다음 턱에 걸려서 따라 오지 않기 때문이다.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가는 것이 소용없다. 큰 눈 턱을 피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성질 급한 박대장의 입에서 따발총 욕이 무의식중에 속사포처럼 터진다.

"니기미 스가바알 조옷도…"

눈 상태가 좋은 곳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시야에 보이는 모든 곳이 사스트루기 이기 때문이다. 방법은 하나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면으로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오늘은 유난히 대원들이 자주 넘어진다. 오희준 대원의 스키스틱은 썰매에 치어 부러졌다. 앞에 서나 뒤에 오나 경쟁이라도 하듯 스키를 신은 채 넘어지는 대원들은 일어나기도 벅차다. 너무 지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욕이라도 한마디 할 법한데 아무 말 없이 털고 일어나 앞사람을 쫓는다. 평소 운행 중에는 대원들보다 2,3백m 이상 앞서 나가는 박대장이지만 오늘은 썰매 한대 들어갈 틈도 없이 오희준 대원이 뒤따른다. 그 뒤를 이현조 대원, 이치상 대원, 조금 떨어져서 강철원 대원까지 모처럼 한 줄로 서서 운행을 한다. 보기에는 좋아 보이지만 속도가 너무 나지 않는다. 운행루트를 잘못 잡은 것은 아닌지 내심 걱정을 해보지만 사스트루기의 너무 깊은 곳까지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때늦은 후회는 아니 한 만 못하다. 어쩌랴.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게 세상 모든 일의 이치이거늘. 그냥 밀고 나가기로 한다. 비록 힘들게 전진하면서 운행거리가 다른 날에 비해 짧다고는 하나 가다보면 지긋지긋한 사스트루기의 끝이 보이지 않겠는가. 남극점에 점점 가까이 다가 갈수록 지금까지 겪지 못했던 새로운 상황이 생겨난다. "성급하게 언제쯤이면 극점도달 하겠다"는 생각은 버리라고 박대장이 대원들에게 일침을 놓는다.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자"고 다짐한다.

저녁식사를 마친 대원들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이현조 대원은 "오늘 운행이 너무 힘들었다"며 "썰매가 설원에 달라붙은 것 같았다"고 말한다. 강철원 대원이 무덤덤하게 말한다. "내일 아침에 썰매 밑바닥을 봐라. 눈이 달라붙어 얼어서 안나갔던 거다" 오희준 대원이 밥을 하는 동안 밖에서 뭔가를 열심히 긁던 강철원 대원은 자신의 썰매 바닥에 얼어 붙어있던 얼음을 떼고 들어 왔던 것이다. 먼저 자리에 누운 박대장은 이현조 대원이 차를 타줘도 마시지 않고 끙끙거리다가 어느새 코를 골며 잠들어 있다. 대원들도 자리를 정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이치상 대원만이 인터넷 전송을 준비한다.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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