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점탐험]1월7일 39일째 -30도 혹한과 싸우다

  • 입력 2004년 1월 10일 16시 05분


화이트 아웃 상황에서 유일한 길잡이가 되는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박영석 탐험대장.
화이트 아웃 상황에서 유일한 길잡이가 되는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있는 박영석 탐험대장.
날씨 : 화이트 아웃

기온 : 영하 28℃

풍속 : 초속 5.8m

운행시간 : 08:55-21:00 (12시간05분-2시간30분 휴식, 정비)

운행거리 : 25.0km (누계 :947.5km) /남극점까지 남은 거리: 182.5km

야영위치 : 남위 88° 21.959′ / 서경 81° 50.912′

고도 : 2,700m / 89도까지 남은 거리: 71.5km

어제 밤 늦은 시각, 이치상 대원은 인터넷 전송을, 이현조 대원은 부러진 스키의 바인딩을 수리하느라 1시가 돼서야 잠에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화이트 아웃이 걷히고 맑은 날이었는데 아침 출발 준비를 하는데 동쪽하늘에서 다시 먹구름이 밀려온다. 기온은 -28도. 바람도 슬며시 고개를 든다. 기상 시간이 30분이나 늦었다. 박대장이 일어나 대원들을 깨운다. (07:00). 늦잠에 미안해진 대원들이 서둘러 식사준비와 출발을 준비하는데 박대장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준비하라"고 3번이나 이른다. 서두르면 실수가 있기 마련. 08:55분 출발. 화이트 아웃을 맞닥뜨리기 전에 어제와 마찬가지로 서둘러 남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그러나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사스트루기 지역이 탐험대의 길을 막는다. 그 사이 화이트 아웃이 천지를 점령한다. 날씨는 추워서 몸을 움직여도 손, 발, 얼굴 등 몸의 모든 부분이 시리기만 하다. 손에는 대여섯 겹의 장갑을 꼈지만 스틱을 쥘 수가 없다. 장갑 속에서 아기 손처럼 말아 쥐고 꼼지락 거려보지만 시린 기운은 가셔지지 않는다. 스틱을 제대로 쥐지 않으니 보이지 않는 발밑의 상황 때문에 대원들이 앞뒤에서 눈밭에 나뒹군다. 이현조 대원은 수리한 바인딩이 다시 망가져서 스키를 신지 못한 채 앞사람을 따라가기 위해 힘든 걸음을 재촉한다.

운행 4시간째, 멀리 앞서가던 박대장이 멈춰 서서 대원들을 기다린다. 대원들이 다 오자 텐트를 치고 임시 휴식처를 만들라고 지시한다. 출발할 때 -28도 이던 기온이 구름이 몰려와 해를 가리고 바람까지 불어대니 탐험 시작 이래 처음으로 -30도 아래로 내려갔다. 텐트 안에서 운행을 대비해 간식을 충분히 먹을 것과 식량, 장비, 촬영장비, 인터넷 전송 시스템 등을 점검하고 이현조 대원은 다시 바인딩을 수리한다. 버너 두 대를 켠 텐트 안이지만 플라이를 치지 않고 임시로 친 상태여서 겨우 한기만 피할 수 있을 뿐이다. 바인딩 수리가 끝나고 곧 출발준비에 들어간다. 화이트 아웃은 완전히 세상을 집어 삼켰다. 발밑의 상황도 전혀 알 수 없는 완전 백색세상이다. 팀워크가 잘 다져진 원정대는 위기상황에서 그 능력이 발휘된다. 춥기도 했지만 순식간에 출발준비가 갖춰지고 박대장은 서슴없이 나침반으로 방향을 잡고 한번 뒤를 돌아본 뒤 앞으로 내 닫는다. 모처럼 썰매의 간격이 일정하게 대열을 이룬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박대장이 평소처럼 내달릴 수 없기 때문이다. 강철원 대원은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졌는지 대열에서 뒤 처지지 않고 운행을 한다. 정신력 하나로 버틴다. 해병대 출신답게. 이현조 대원의 스키 바인딩이 또 문제다. 운행 시작 얼마 되지 않아 다시 고장이다. 스키를 썰매 위에 매달고 설원을 걷기가 보통 힘들지 않을 텐데 숨을 몰아쉬며 뒤떨어지지 않고 걷는다. 해병대 장교 출신답게 정신력과 체력은 탐험대원 중 최고다. 다행히 사스트루기 지역은 그 규모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날씨만 맑아진다면 운행속도가 좋아질 것이다. 문제는 해발 2,700m의 고소에 올라서자 숨이 가쁘고 그로 인해 썰매를 끄는데 다소 힘이 든다.

어느덧 탐험 39일째. 어제부터 카운트 다운에 들어 간 탐험대에게 남극은 모든 것을 총동원해서 저지선을 편다. 해발고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혹한(-30도)과 화이트 아웃에 오후 들어서는 미친 바람까지 불어댄다. 탐험대는 남극의 거센 저항에 기가 눌려 잠시 주춤했지만 전열을 가다듬고 마지노선 돌파에 전력투구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극의 저항은 더욱 거세진다. 오후 9시, 잠시 휴전이다. 탐험대는 하루의 전투를 끝내고 전열을 가다듬기 위해 캠프를 차린다. 내일 아침이면 전투는 계속되고 그 싸움의 끝은 일주일 안에 판가름이 나리라. D-7이다.

남극점탐험대 이치상 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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