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달이’ 이봉주(34·삼성전자)와 ‘마라톤 사관학교’ 건국대의 엄효석(20). 14세 차이인 이 마라톤 선후배는 3월 14일 열리는 서울국제마라톤을 앞두고 동계훈련 중.
“효석아, 난 아테네올림픽에 내 마라톤 인생을 걸 테니 넌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맡아라.”(이봉주)
“고맙습니다. 이렇게 형과 함께 달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입니다. 마라톤에만 매진해 꼭 세계적인 선수가 되겠습니다.”(엄효석)
이들은 각각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마라톤의 간판과 최고 유망주. 이봉주는 90년부터 지난해까지 풀코스에 31회 도전해 30회 완주한 철각. 애틀랜타올림픽 은메달, 보스턴마라톤 우승, 아시아경기 2연패 등을 달성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스타다.
엄효석도 아직은 꿈나무에 불과하지만 자질은 이봉주 못지않다. 2002년 고교 9개 대회 중장거리를 휩쓸었고 5000m, 1만m는 물론 각종 구간마라톤에서 1위를 달렸다. 무엇보다 1500m를 3분51초 만에 주파할 정도로 스피드가 좋아 속도 경쟁의 현대 마라톤 추세에 딱 맞는 자질을 갖췄다.
육상에서도 중장거리는 대표적인 3D종목. 이런 가운데 혜성처럼 나타난 엄효석은 이봉주에게 ‘너무 고맙고 예쁜 후배’다. 후계자를 골라 보라는 말에 이봉주는 주저 없이 엄효석을 지목했다.
엄효석은 대학 새내기였던 지난해 전국체전 5000m에서 은메달을 따내는 등 대학 무대 돌풍의 주인공. 지난해 3월 동아서울국제마라톤에선 30km지점까지 우승자 거트 타이스(남아공)와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여 전문가들을 놀라게 했다. 요즘 그는 왼쪽 발바닥에 족저근막염을 앓고 있다. 고교 시절 너무 훈련을 많이 한 탓이라고.
“마라톤 선수에게 몸은 생명이야. 이상이 있으면 훈련을 중단하고 병원에 가야 해. 참고 운동하는 것도 일종의 오버페이스야.”(이봉주)
“고맙습니다. 언제나 노력하는 봉주형을 좋아했어요. 꼭 봉주형 같은 마라토너가 되겠습니다.”(엄효석)
한국 마라톤의 ‘오늘과 내일’은 다시 나무 냄새 상큼한 오솔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제주=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이봉주 편지▼
효석아. 선배로서 몇 마디 띄운다.
마라톤을 하기 위해선 많은 희생이 따른단다. 사생활을 모두 누리면서 마라톤도 하려고 하면 성공할 수 없다. 내가 직접 느낀 것이다. 하루 24시간 매달려도 단 1초를 단축하기 어려운 게 마라톤이지만 노력한 만큼 대가가 따르는 게 또 마라톤이란다.
넌 아직 어리니 너무 서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스피드가 없으면 국제무대에서 살아남지 못하는 게 마라톤임을 너도 잘 알겠지. 너는 국내 대학생 중 최고의 스피드를 갖고 있으니 그 장점을 살려 스피드 훈련에 더욱 집중했으면 한다. 그러면서 체력을 키운 뒤 마라톤 풀코스에 입문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거야.
한 가지 더. 넌 키가 큰 편이니 체력 소모를 줄이는 주법을 개발하는 것도 잊지 말아라. 2008년 올림픽에서 네가 세계를 제패하는 모습을 보고 싶구나. 기대하겠다. 봉주가.
▼엄효석은 누구▼
△생년월일=1984년 6월 20일 생
△가족관계=엄기용(50), 조은희씨 (50)의 1남1녀 중 둘째
△출신학교=배문중-배문고-건국대
△2003년 성적=종별선수권 전국 선수권 전국체전 5000m 2위, 하계유니버시아드 5000m 13위
△체격 조건=1m75, 57kg
△육상 시작=중1 때
△취미=음악감상 컴퓨터게임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