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그에게 ‘앞으로 한국농구를 짊어질 후계자를 꼽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워낙 바빠 고등학교나 대학경기를 많이 못 봤다”며 대답을 피했다. ‘내 후계자는 없다’는 의미였을까.
열흘 뒤 허재로부터 연락이 왔다. “올해 고교 졸업예정자 중에 장신 가드가 있는데 기본기가 착실한데다가 머리회전도 빨라 기대해 볼 만 하다”는 얘기. 허재가 칭찬한다면 보통 선수가 아니다. 주인공은 부산중앙고 출신으로 중앙대 입학예정인 강병현(19). 웬만한 팀에선 센터도 할 수 있는 1m94의 장신이지만 포지션은 가드다.
설 연휴를 하루 앞둔 20일. 강병현은 20년 대선배 허재를 만나러 원주의 TG삼보 숙소를 찾았다. 웨이트트레이닝장에서 몸을 풀고 있던 허재는 새까만 후배를 만나자 마자 “요즘 연습게임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아직도 간식으로 라면을 먹느냐? 음식 가리는 것은 없냐? 웨이트트레이닝은 하루 몇 시간씩 하냐?”고 속사포처럼 질문을 쏟아냈다.
강병현은 칭찬보다 꾸중을 많이 들었다. 강병현의 팔뚝을 잡은 허재. “이게 여자 팔뚝이지 농구선수 팔뚝이냐? 웨이트를 열심히 해야 오래 뛸 수 있다, 잠을 안 자더라도 체력운동은 거르지 말아야 해.”
자신의 ‘대를 이을’ 후배의 실력이 궁금했던 것일까? 허재는 대뜸 체육관에 가서 볼을 만져보자고 했다. 원주치악체육관 코트에서 대스타와 새내기는 20년 나이차를 뛰어넘어 놀이를 하듯 슈팅과 드리블 연습을 했다.
“슈팅할 때 왜 팔을 구부리냐. 쭉쭉 펴.” 야단을 치면서도 허재의 얼굴엔 흐뭇한 웃음이 퍼졌다. 만족스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초등학교 3학년 말 농구 팬인 어머니의 영향으로 볼을 잡은 강병현은 10년 동안 가드 포지션만 고집했다. 이유가 궁금했다.
“가드는 받아먹는 게 아니라 스스로 게임을 만들어 나갈 수 있잖아요. 어시스트 찔러주는 재미도 그만이고, 찬스가 나면 슈팅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그래서 앞으로도 가드만 할 작정이란다.
그 동안 그를 놓고 각 대학의 스카우트전이 펼쳐졌지만 그는 진로를 놓고 고민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실업 기아팀의 열렬한 팬이셨죠. 어렸을 때 기아 선수 프로필을 보니까 거의 중앙대 출신이더라구요. 그래서 커서 중앙대에 가겠다고 마음먹었어요.”
허재의 레슨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허재의 얼굴에도, 강병현의 얼굴에도 땀이 흘렀다.
헤어지기에 앞서 허재는 강병현에게 두 번 세 번 강조했다. “가드는 항상 공부하고 연구해야 한다.” 덕담도 잊지 않았다. “새해 복 많이 받아라. 좋은 가드 되고.”
원주=전 창기자 jeon@donga.com
▼선배님, 묻고 싶었어요▼
○강병현=예전엔 키가 작아 고민이었는데 요즘은 커서 고민이에요. 자세가 높아져서인지 볼을 예전보다 자주 빼앗기거든요. 해결책이 있을까요?
○허재=농구에서 키가 커서 불리한 건 없어. 자세가 중요하지 않은 운동이 없지만 농구는 특히 더 그래. 슛만 던지는 선수들은 자세가 높아도 상관없지만 가드는 달라. 항상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연습을 해야지.
○강병현=슛 연습과 드리블이나 패스 연습 가운데 어느 쪽을 더 해야 되나요?
○허재=공 갖고 노는 게 농구의 기본이야. 개인훈련 때는 슛 연습에 치중할 수밖에 없지만 동료가 있으면 드리블하고 패스 연습을 해봐.
○강병현=대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면 신이 나요.
○허재=대학생활도 열심히 해야지. 하지만 놀 때와 운동할 때, 공부할 때를 구분해야 해. 운동하면서 놀고, 놀면서 운동하는 자세론 아무 것도 안돼. 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숙소에 전화도 없었어. 요즘은 휴대폰이 있지만 너무 많이 통화하는 것도 운동에 방해된다.
전창기자 jeon@donga.com
▼강병현은 누구?▼
△생년월일=1985년 3월3일
△체격=1m94, 82kg
△포지션=가드
△가족관계=강갑철(45) 박외정(40)씨의 1남1녀 중 장남
△출신학교=부산성남초교→동아중→부산중앙고→중앙대 진학 예정
△농구 시작 시기=초등학교 3학년 말
△좋아하는 농구선수=제이슨 키드(뉴저지 네츠·가드)
△취미=컴퓨터게임(스타크래프트, N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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