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키가 흰 눈을 가를 때마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울렸다. 스키 에지가 눈 속을 파고들며 절묘하게 방향 전환이 이뤄졌다. 왼쪽, 다음엔 오른쪽, 그리고 점프까지….
매끄럽게 활강하는 모습은 일반 스키어의 모습이었지만 다른 점은 스키가 하나뿐이라는 것. 한상민(25·한국체대·사진)은 앉아서 다리를 묶고 모노스키를 타는 장애인 선수였다.
18일 무주에서 막을 올린 제85회 전국동계체육대회. 이날 실크로드코스에서 열린 알파인 스키 슈퍼대회전에 앞서 장애인 스키어들의 시범경기가 열렸다. 국내엔 아직 장애인 스키대회가 없기 때문에 동계체전이 열릴 때마다 개최되는 시범경기다.
이날 출전한 장애인 선수는 모두 4명. 이 가운데 김홍빈과 정원두는 점프를 하다 넘어지는 바람에 완주하지 못했다. 하지만 국가대표 한상민은 1분43초74의 기록으로 매끄럽게 완주해 박수를 받았다.
남대부 슈퍼대회전 1위 기록이 1분13초84니까 일반 선수와는 약 30초 정도 차이가 나지만 하반신을 사용하지 못하는 터라 상체와 팔만 써서 이 정도 기록을 낸 것도 대단했다.
한상민은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 장애인 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알파인 스키 사상 처음으로 은메달을 따낸 선수. ‘시팅(seating) 스키 LW12-1(허리를 사용하지만 걷지 못하는 장애인들 경기)’의 대회전 종목에서였다.
선천성 소아마비를 앓은 그가 스키에 입문한 건 96년. 용평에서 열린 장애인들을 위한 스키 캠프에 참가한 뒤부터 스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팔이 긴데다 눈을 타는 감각이 뛰어나 두각을 나타낸 한상민은 국가대표로 선발돼 99년 나가노에서 열린 초청대회에 나갔으나 꼴찌. 이후 김남제 국가대표감독(42)의 피나는 지도아래 세계정상급 선수로 거듭 났다.
김 감독은 “기술면에서 보면 상민이는 이미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 있다. 다만 몸무게(42kg)가 많이 나가지 않아 스피드에서 손해를 보는 게 단점”이라며 “몸무게를 불려 파워를 보강하면 2006년 토리노 장애인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노릴 만 하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기후 때문에 훈련기간이 11월부터 2월까지로 짧은 게 안타깝다”고 할 정도로 운동욕심이 넘치는 한상민은 “토리노에선 반드시 금메달을 따오겠다”는 각오.
틈나는 대로 여자친구와 데이트도 즐긴다는 그는 신체의 장애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강한 젊은이였다.
무주=김상수기자 sso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