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가지 색의 볼펜으로 득점과 서브에이스, 블로킹 등 배구 경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록을 나름의 방법으로 공책에 체계적으로 적는다. 경기가 열리면 ‘타타타탁…’ 콩 볶듯 볼펜을 공책에 찍어대며 기록한다. 이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 ‘볼펜 아저씨’.
현재 진행 중인 2004배구 V투어는 물론 실업 및 대학연맹전, 초중고교대회 등 배구 경기가 열리는 곳엔 어김없이 그가 있다. 지금까지 기록한 공책만 700권이 넘는다.
대한배구협회 공식기록원이 아니기 때문에 보수는 물론 없다. 하지만 그는 “배구를 보고 있노라면 세상 모든 것을 얻는 듯하다. 그냥 배구가 좋다”고 말한다.
경남 고성군 동해면 외곡리의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난 정씨는 서울 한영중 1년을 중퇴하고 고향으로 내려가 농사를 지었다. 정씨는 처음에는 야구 축구 농구 배구 등 각종 스포츠의 경기 내용을 혼자 기록했는데 그 가운데 배구에 가장 큰 재미를 느껴 오늘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농사를 짓거나 멸치건조공장에서 일해 번 돈으로 배구장 돌아다니는 여비를 마련했으나 요즘엔 아예 배구장에서 산다. 기록지를 만들어 주는 덕분에 각 팀에서 주는 약간의 수고비로 차비와 식비, 여관비를 충당한다.
정씨의 기록 덕분에 대학 교수가 된 사람이 10명이 넘는다고 한다. “체육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내 데이터를 가져가 통계기법을 사용해 논문을 쓰더니 교수가 되더라”는 얘기다.
이젠 정씨도 ‘박사’가 됐다. 초등학교에서 실업 선수까지 각종 기록은 물론 개인 사생활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니 ‘배구 박사’인 셈.
배구와 결혼했다는 정씨는 “앞으로도 계속 배구와 함께 살 생각”이란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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