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와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비가 내린 지난해 대회 때와 달리 맑게 갠 하늘에 출발 때 기온은 섭씨 4.5도, 풍속은 초속 2.4m로 적당했다. 선수들의 컨디션도 괜찮아 보였다. 마라톤 기록 단축의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것.
그래서였을까. 남자부 선두그룹의 초반 페이스가 너무 빨랐다. 의욕이 넘친 페이스메이커들도 과속 경쟁을 부추겼다. 5km 지점을 14분58초에 끊었고 10km지점을 통과했을 때도 5km 랩타임이 14분50초. 5km 랩타임을 15분 정도로 유지했어야 했는데 10초 가까이 빨랐던 셈이다. 초반부터 무리한 데다 15km 지점을 지나면서 오르막 구간으로 연결되다 보니 페이스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밖에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2년 연속 우승한 거트 타이스는 37km지점에서 승부수를 던진 게 주효했다. 풍부한 경험의 소유자답게 내리막에서 스퍼트를 내면서 이봉주, 윌리엄 킵상을 따돌리는 노련한 레이스를 펼쳤다. 타이스의 40km 통과 랩타임은 14분35초였을 만큼 뒷심이 대단했다.
너무 일찍 힘을 뺀 이봉주는 25km지점에서 치고 나가려는 듯 했는데 여의치 않아 보였다. 37km지점부터는 타이스에게 100m 이상 처졌는데 만약 40km지점까지 따라붙었다면 끝까지 명승부를 펼치며 한국 최고 기록도 노려볼 만 했기에 아쉽다.
여자부 우승자 이은정의 발굴은 큰 수확이었다. 97년 권은주 이후 7년 만에 역대 2위인 2시간26분대의 기록을 올린 쾌거로 침체에 빠진 여자마라톤의 가능성을 밝혔다. 고교 시절 육상 중거리 출신답게 스피드가 돋보였고 약점으로 지적된 지구력도 키웠다. 키에 비해 보폭이 큰 편인데 이 점만 보완하면 대성할 자질이 충분하다.
황규훈 건국대 마라톤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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