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경기 용인시 스피드웨이 자동차경기장. 자동차 서킷(경기용 도로)을 달리는 경주용 차들이 굉음을 내며 시속 180km로 달린다. 순간 태풍이 지나간 것 같은 바람과 진동이 바닥을 통해 관중석까지 전해 온다.
국내에서는 최고 등급으로 인정받는 포뮬러(바퀴가 차체 밖으로 돌출된 1인승 경주차)1800의 주행 모습은 마치 이륙직전의 비행기 같다.
28일 용인에서 열리는 한국모터챔피언십(KMRC) 시리즈의 올해 첫 경기, ‘BAT GT 챔피언십 1회전’ 을 앞두고 참가팀들이 막바지 연습에 여념이 없다. 실전과 같은 긴장감이 흐른다.
BAT사 후원으로 열리는 이 대회는 국내 유일의 공인 자동차경주대회. 이 대회를 시작으로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모두 7번의 경기를 치른 뒤 통산 성적으로 최고의 승자를 가린다. 그런 만큼 레이서들은 이 대회를 놓칠 수 없다. 신인전부터 최상위 등급인 포뮬러1800 경기까지 모두 7등급의 경기에 32개팀, 73대의 차량이 출전한다.
고속 주행이 목표인 모터스포츠는 목숨을 건 질주의 레이스다. 때문에 경쟁도 살벌하다. 노련한 드라이버도 혜성처럼 등장한 신인의 속도 앞에서 처참히 무너질 수 있다. 선수들뿐 아니라 정비기술자와 제작사 등 모든 구성 요소의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야 한다. 팀워크와 개인기를 최대한 발휘하면서 예측불허의 위험에 대처하는 동시에 최고 속도에 도전하는 스포츠. 서로 모순된 과제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초긴장의 예술, 모터스포츠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 팀워크의 스포츠
‘콰콰 카카카카∼.’
돌 알갱이가 튀는 갑작스러운 소리에 서킷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6번 코너로 쏠렸다. 포뮬러 차량 한 대가 좌우연속회전코너에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코스를 이탈했던 것. 이번 대회 최연소 드라이버 안석원 선수(17·인디고)가 모는 차량이었다. 다행히도 다시 코스로 간신히 되돌아왔지만 모두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지난해에 이은 두 번째 출전이라 아직 스피드에 익숙하지 않다.
피트(정비장소)에 돌아온 안 선수는 소속팀 미캐닉(정비기술자)들에게 연방 “죄송하다”며 머리를 조아렸다. 미캐닉 팀장 이태희씨(31)가 십년감수했다는 표정을 거두고 “조향장치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냐”고 묻는다. 지금이라도 문제점을 발견해 정확히 짚고 넘어가게 된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다독거렸다.
대당 4억∼5억원이 넘는 포뮬러 차량은 지상고(땅에서 차 밑바닥까지의 높이)가 불과 3cm정도라 작은 요철에도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미캐닉이 볼트를 한 번 더 조여야 되는지, 드라이버가 풋워크(발놀림) 훈련을 더 해야 하는지 서로가 자기 일처럼 속속들이 알고 있어야 한다. 주행시간보다 회의시간이 더 많은 것도 그 때문. 이들은 대회 때마다 일주일씩은 합숙을 한다.
“차에 결함이 있는 게 아니라 코너에서 욕심을 낸 게 문제지. 지르기(스피드를 내는 것)는 코너에 들어간 다음에 하라니까.”
같은 팀 대선배 김의수 선수(32)가 문제점을 지적한다. 그는 이 대회 GT1(일반승용차를 완전개조한 차) 부문 3연패를 노리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의 드라이버다.
김 선수는 후배들이 왕성한 혈기를 앞세워 조바심을 낼 때마다 늘 여유와 겸손을 강조한다. 뭐든지 잘할 것 같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 그는 “급할 때일수록 여유를 갖고 자연스러운 리듬을 타야 더 앞서나갈 수 있다”고 조언한다.
○ 쾌감100%, 도전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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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처음 대회에 출전하는 강윤수 선수(19·타키온)는 여성 카레이서다. 지난해까지 카트(소형 경주용 차)를 타다가 올해는 아예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프로 포뮬러 레이서를 택했다.
지난 해 레이서로 입문한지 얼마 안 돼 카트 경기도중 앞차의 뒤 타이어를 타고 넘어 경기장펜스에 충돌하는 사고를 겪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말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강 선수는 “그래도 쭉 뻗은 도로를 홀로 질주할 때 느끼는 쾌감은 다른 무엇과도 대신할 수 없는 레이싱의 매력”이라고 설명한다.
같은 팀 멤버이자 아버지인 강현택 선수(44)는 지난해 투어링A 챔피언. 그는 “달릴 때만큼은 모든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의 상태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레이싱 예찬론을 편다.
그러나 레이스가 그렇게 즐겁고 편한 것만은 아니다. 성능이 비슷한 국내 자동차 경기에서는 작은 실수나 욕심이 승패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올해 대회는 모든 레이서들이 긴장할 만한 ‘사건’이 생겼다.
고급 수입자동차 브랜드인 BMW(320i)와 렉서스(IS200)가 GT1 경기에 출전하게 된 것. 그동안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현대(투스카니)와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펼쳐질 예정이다.
연습장에서 만난 각 팀의 선수들은 상대방 차량사이를 돌아다니며 연신 기웃거렸다. 오랜 노하우나 훈련보다 새로운 기술을 접목한 차량으로 신예 선수들이 우승을 낚아채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뉴 페이스에 대한 견제가 다른 스포츠보다 심하다.
원형트랙 2.215km를 한바퀴 도는 평균시간은 1분 내외지만 30분간의 연습시간동안 20바퀴 이상을 도는 차량은 없다. 실력을 다 보여줄 필요가 없기 때문. 실제 GT경기의 경우 39바퀴를 40분내외에 돈다.
○ 모터스포츠의 르네상스
최근엔 레이싱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아마추어 선수만을 위한 경기도 생기고 있다. 한국경주협회(KARA) 관계자에 따르면 비공식 경기를 포함해 한해 열리는 경기종류는 20여개, 50여전에 이른다. 오프로드, 드래그레이스, 연비레이스, 카트레이스 등 종류도 다양하다.
관중수도 비약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KMRC 박상규 대표는 “2년 전만해도 5000명이 채 안되던 경기당 관중수가 지난해 1만명을 넘었다”며 “올해는 1만5000명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모터스포츠 평론가이자 캐스트롤-BMW팀장인 이동훈씨는 “폭발적인 엔진음과 시속 150km가 넘는 스피드를 보고 있으면 스트레스 해소도 되고 대리만족도 얻기 때문에 마니아층이 느는 것 아니겠느냐”며 “튜닝카의 화려한 외관을 보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는 처음으로 2000cc급 이상 카트경주대회인 세계 챔프카 경기가 서울에서 열리고 99년 시작된 포뮬러3(F3)국제경기가 창원에서 열릴 예정이어서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다.
또 올림픽, 월드컵 등과 함께 세계 3대 스포츠로 불리는 포뮬러1(F1)도 국내 유치를 추진 중이다. 세계 16개국에서 열리는 F1은 연간 350만명의 관중과 200개국 400억명의 시청자를 확보한 최고의 모터스포츠 경기. 경상남도가 진해시에 40만평의 부지를 이미 확보해 놓고 2009년 경기유치를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세계 자동차 생산 6위의 ‘자동차 대국’ 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모터스포츠의 국제화도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국내주요 자동차경주대회 일정 | |||||||||
해외 포뮬러1 자동차 경주 대회 일정 | |||||||||
김재영기자 jay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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