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여 만에 힘찬 부활 퍼포먼스를 시연 중인 '코리언 특급' 박찬호(30, 텍사스 레인저스)의 앞길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다.
지난 7일(이하 한국시간) 현역 최고의 좌완으로 거론되는 '천적' 마크 멀더(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맞대결에서 7.2이닝 동안 7피안타 3실점, 탈삼진을 무려 8개나 솎아내는 부활투로 텍사스 지역언론으로부터 모처럼만에 합격점을 받았던 박찬호.
하지만, 멀더의 벽을 넘어서지 못한 박찬호에게 또 다른 빙벽이 도사리고 있다. 바로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에이스 바톨로 콜론이다. 박찬호는 12일 오전 5시 5분 텍사스의 홈구장인 알링턴 볼파크에서 바톨로 콜론(30, 애너하임 에인절스)과 힘겨운 한판 승부를 벌일 예정이다.
인상적인 투구를 보이고도 멀더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해 패전의 멍에를 뒤집어 쓴 박찬호가 만약 콜론과의 승부에서도 만족할 만한 결과를 도출해내지 못한다면, 박찬호의 부활 퍼포먼스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찬호의 시즌 전체를 놓고 보더라도 콜론과의 맞대결은 하나의 큰 흐름을 좌우할 대결이라는 점에서 국내팬은 물론, 텍사스 팬들에겐 초미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박찬호가 텍사스 전력의 구심점이기 때문.
바톨로 콜론은 누구? 우선 박찬호가 상대해야 할 애너하임 타자들에 앞서 마운드에서 맞대결을 펼칠 콜론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하자. 도미니카 출신 콜론은 알려졌다시피 '에일리언' 페드로 마르티네스(보스턴 레드삭스)의 절친한 죽마고우다.
2002시즌 종료 후 보스턴에서 콜론을 영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아쉽게도 '탈색 공장장' 조지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의 장난으로 '빨간 양말(레드삭스)'에서 '흰 양말(화이트삭스)'로 유니폼을 바꿔 입었던 선수다.
콜론의 주무기는 무엇보다 최고구속이 100마일대 달하는 '옥탄가 높은' 포심 패스트볼. 게다가, 경기 종반까지 95마일대 이상을 유지하는 스태미너도 콜론의 또 다른 트레이드 마크. 최근 들어서는 포심에 브레이킹 볼까지 추가 메뉴로 장착, 투구 패턴의 다양화에 성공했다.
콜론은 박찬호와 상당한 유사점을 지니고 있다. 우선 73년생이라는 점도 그렇고, 박찬호가 한국을 대표하는 에이스라는 점, 그리고 콜론은 페드로와 더불어 도미니카를 대표하는 에이스라는 점도 그렇다. 그리고, 100마일의 광속구를 구사한 파이어볼러(Fireballer)라는 점까지도 흡사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은 둘 다 좌타자에겐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인다는 점이다.
콜론 vs 텍사스 방망이
콜론의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Vs. RIGHT)는 .167에 불과한 반면,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Vs. LEFT)는 무려 .273에 이른다는 점.
이 부분이 바로 텍사스 타선이 집중 공략해야 할 부분이다. 좌타자 행크 블레이락과 랜스 닉스, 그리고 스위치 히터 마크 텍세이라가 콜론 공략의 선봉에 서야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지명타자도 페리보다는 좌타자 풀머를 내세우는 게 콜론 공략엔 효율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텍사스 타선 중에서 콜론에게 가장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좌타자로는 랜스 닉스(타율 .400)과 브래드 풀머(.250 2홈런)다. 풀머의 한 방은 콜론의 고공 비행을 격추시킬 가능성이 높다. 특히, 알링턴 파크의 라이트 필드에 형성되는 상승기류를 이용한다면 더욱 실현 가능성이 높아 진다.
우타자 중에는 알폰소 소리아노(타율 .300)과 마이클 영(.357)이 콜론 격추의 선봉에 서야 한다. 그리고, 한 가지 승부수로 외야 라인을 좌타자 위주로 구성하는 게 효과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콜론의 공략법은 콜론의 투구 후 수비동작에 취약하다는 사실.
콜론은 투구 후 몸이 1루쪽으로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즉, 센터 쪽으로 굴러가는 땅볼에는 수비가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센터 라인을 중심으로 한 짧게 끊어치는 타격이 효과적일 수 있다. 물론, 교타자들의 경우다. 슬러거들은 알링턴 파크 우측 외야의 상승기류를 이용할 필요가 있다.
박찬호 vs 애너하임 방망이
역시 요주의 인물 1호는 '예언자' 블라디미르 게레로다. 박찬호가 잘 던지다가 '불의의 한 방'에 무너진 경우를 보듯 게레로의 한 방에 가장 유의해야 한다. 게레로의 대 박찬호 상대 성적은 .259 1홈런 5타점 6삼진이다.
게레로와 더불어 가장 경계해야 할 타자는 게럿 앤더슨이다. 알링턴 파크라는 점에서 볼 때 오히려 게레로보다는 좌타자 앤더슨을 박찬호의 블랙리스트에 1호로 올려야 한다.
이 외에도 박찬호에게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는 선수는 2루수 애덤 케네디(.444)와 포수 벤지 몰리나(.333)이다. 두 선수는 공포의 한 방은 없기에 박찬호가 상대하기는 앤더슨이나 게레로보다는 편하다.
하지만, 이 들을 루상에 내보낸다면 상위타선의 앤더슨이나 게레로에게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출루 자체를 차단시키는 데 투구의 중점을 둬야 한다. 이 외에도 대린 얼스태드(.308)도 좌타자라는 점에서 박찬호가 세심한 신경을 기울여야 할 타자다.
테일링 패스트볼(Tailing Fastball) 구사 방법 'at 알링턴'
박찬호가 2004시즌에 돌입하면서 새롭게 장착한 무기가 바로 '테일링 패스트볼(Tailing Fastball)'이다. 테일링 패스트볼은 패스트볼에 가깝지만 속도는 직구보단 느리고 볼끝이 우타자의 몸쪽으로 휘는 볼이다.
그런데, 문제는 테일링 패스트볼을 박찬호가 활용하는 방법 즉, '레서피'가 문제다. 2004시즌부터 3루쪽 피처 플레이트를 활용하는 박찬호가 앤더슨이나 얼스태드를 상대로 좌타자 몸쪽으로 향하는 테일링 패스트볼을 구사하면, 자칫 큰 타구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특히, 앤더슨의 방망이질로 볼 때 테일링 패스트볼(Tailing Fastball)을 가장 잘 공략할 수 있는 스윙 메카니즘을 보유한 것으로 보인다. 앤더슨이 특히 좌타자이라는 점, 알링턴 볼파크의 라이트 스탠드가 더 가깝게 느껴질 수 있다. 앤더슨의 경우는 최대한 테일링 패스트볼을 자제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부득이하게 테일링 패스트볼을 구사할 때, 좌타자인 경우에는 홈플레이트의 3루측 끝을 통과하는 로케이션(Location)을 적용해야 하며, 우타자인 경우에는 홈플레이트의 1루측 끝을 겨냥해야 한다는 점이다. 장타와 알링턴 파크의 상승 기류를 최대한 억제하기 위한 투구 노하우다.
그리고, 테일링 패스트볼을 구사할 때 박찬호가 유념해야 할 부분은 '좌타자와 타석과의 거리'다. 좌타자가 타석에 붙어있을 때는 테일링 패스트볼을 몸쪽으로 던지는 게 효과적이지만 좌타자가 홈플레이트에서 떨어져 있는 경우는 바깥쪽으로 구사하는 게 효과적이다.
만약, 박찬호가 좌타자의 타석 위치를 파악하지 않은 채 테일링 패스트볼을 구사하거나 제구가 안돼 한 가운데로 몰리면 장타를 허용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 특히, 알링턴 볼파크에서 유의해야 할 부분이다.
'싱킹 패스트볼' 구사 빈도를 늘려라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애너하임과의 대결에서는 테일링 패스트볼의 구사 빈도를 줄이는 대신, 그라운드볼을 유도할 수 있는 '싱킹 패스트볼(Sinking Fastball)'의 활용 빈도를 늘리고 로케이션을 다양화하는 편이 더욱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앞서 말했지만, '박찬호 vs 바톨로 콜론'의 맞대결은 박찬호의 2004 시즌 전체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키 게임(Key Game)'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박찬호가 스프링 트레이닝 동안 보여줬던 '부활 퍼포먼스'가 무위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선 이 경기의 결과가 상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12일 새벽 선잠을 설칠 국내팬들의 아침에 희망의 메시지를 선사할 수 있는 '코리언 익스프레스' 박찬호의 애너하임전 눈부신 호투와 첫 승의 소중한 결실을 기대해 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