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세 차례의 선발 등판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경기였다. 직구의 구속은 고작 87~90마일에 머물렀고, 커브와 슬러브는 밋밋함 그 자체였다. 체인지업은 계속해서 높은 쪽에서 존을 이루었으며, 몸에 맞는 볼을 2개나 허용하는 등 컨트롤도 경기 내내 흔들렸다. 이번 시즌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투심도 특유의 움직임을 형성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닉스의 홈런으로 2점을 추격한 상황에서 곧바로 점수를 허용하는 장면, 빠른 퀵 모션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주자를 묶어두지 못하는 무책임한 모습 등 이날 경기의 박찬호는 실망, 실망, 또 실망… 그야말로 실망의 연속이었다.
수비수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것도 단순한 핑계에 불과하다. 박찬호의 투구 내용은 분명 승리 투수와는 거리가 멀었으며 소리아노의 수비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졌다고 하더라도 빠른 발의 얼스태드를 1루에서 잡기엔 역부족이었다.
간단하게나마 박찬호의 투구 동작을 되짚어보면, 일단 하체가 쉽게 무너지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하체에 크게 의존하는 박찬호로서는 승리의 절반을 잃고 경기를 시작한 셈. 하체가 무너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상체가 넘어오지 못했고, 이로 인해 팔로만 공을 던지는 모습이 역력히 드러났다. 당연히 볼위 구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었고, 제구력도 안정감을 찾지 못했다.
또한 손목으로 공을 낚아채는 동작도 볼 수 없었다. 때문에 공을 던지는 것이 아닌 미는 듯한 투구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볼의 무브먼트도 발생하지 못했다.
포수 로드 바라하스와의 호흡도 전혀 맞지 않았다. 경기 초반 박찬호의 직구가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음에도, 지나치게 직구 위주의 피칭을 요구하는 장면은 기름을 몸에 뿌리고 불 속에 뛰어든 것과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바라하스는 계속해서 도루를 허용, 박찬호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했다. 비록, 이동일이지만 휴일이 없는 이동일이었고, 박찬호가 여전히 부활 과정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21일, 22일 경기 밖에 출전하지 않은 레어드를 선발 기용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다.
상대가 막강 타선을 자랑하는 애너하임과 콜론이었다지만, 같은 상대에게 두 차례나 뭇매를 맞은 점, 이번 시즌 텍사스가 애너하임에게 당한 2패(5승 2패 텍사스 우위)를 모두 박찬호가 당했다는 사실, 아울러 경기 내내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것은 엄청난 몸값을 받는 에이스로서 비난을 면할 길이 없어 보인다.
박찬호가 실망스런 투구 내용을 보인 이날 경기에서는 애너하임이 7대 5의 승리를 거두었다. 1회말 트로이 글로스의 3점 홈런으로 기선을 잡은 애너하임은 2회초, 랜스 닉스에게 투런 홈런을 허용했지만, 2회와 5회 얼스태드의 적시타와 다바논의 홈런 등으로 4점을 추가, 델루치의 2개의 홈런으로 추격전을 펼친 텍사스를 2점차로 물리쳤다. 3연패 탈출.
애너하임의 선발 콜론은 5이닝 동안 2개의 홈런을 허용하며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팀 타선의 도움과 과감한 몸쪽 승부로 시즌 3승째에 성공했다. 유독 낮 경기에서 더욱 강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는 콜론은 이날 경기에서도 승리, 낮 경기(2002시즌 이후 16승 1패)의 지존(至尊)다운 모습을 이어갔다.
비록, 팀은 패했지만 데이빗 델루치는 2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는 인상적인 활약을 선보였다. 박찬호의 새로운 도우미로 등장한 랜스 닉스도 2회 투런 홈런을 쏘아 올리는 등 혼자 3타점을 기록하며 물오른 타격감을 자랑했다.
임동훈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arod7@mlbpar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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