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프로야구/마니아칼럼]박찬호, '5월을 황금분할하라!'

  • 입력 2004년 5월 5일 14시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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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가 어린이날 최고의 선물을 알링턴 파크로부터 공수해오는 데 실패했다.

최근 경기 중 최고의 호투에도 불구하고 시즌 2승이 알링턴 파크 우측 담장 너머로 날라가 버리고 말았다. 5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의 홈구장 알링턴 파크에서 열린 대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전에서 시즌 2승을 꿈꿨던 박찬호의 바램은 호투에도 불구하고 아깝게 무산되고 말았다.

5.2 이닝 동안 6피안타 3실점(3자책)하며 탈삼진을 5개나 솎아내며 시즌 평균 자책(방어율)을 5.50으로 낮추는 데는 성공한 박찬호, 5회 2사 후 4-3으로 리드를 잡은 뒤 강판했지만, 텍사스의 세번째 투수 에라스모 라미레스가 7회 저프 블럼에게 좌월 솔로포를 허용, 4-4 동점을 만들며 박찬호의 승을 날려버렸다.

박찬호는 6.2 이닝 동안 103개를 던져 56개의 스트라이크를 기록했다. 이는 경기 초반 풀 카운트의 접전으로 인해 볼의 갯수가 늘어난 것. 초반 승부에서 실투를 우려, 상당히 조심스런 투구를 보인 반면 경기 중반 홈런 두방으로 승을 사실상 놓쳐버린 것과 다름없다.

한편, 박찬호의 텍사스는 4-4 동점 상황이던 9회 초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결승 솔로홈런을 허용하며 탬파베이에 4-5로 석패, 5연승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박찬호, 2승 실패 요인

박찬호가 시즌 2승 도전에 실패한 표면적인 원인은 바로 에라스모 라미레스의 피홈런에 존재한다. 하지만 박찬호 스스로도 승리를 날리는 과정에서 일부 원인을 스스로 제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① 데이타(Data) 활용 미숙

저프 블럼에 대한 경계심 부족을 꼽을 수 있다. 블럼은 박찬호 통산 상대 타율이 .300이며 게다가 홈런을 뽑아낸 통계가 있어 어브리 허프와 더불어 탬파베이 블랙리스트 0순위였다. 하지만, 박찬호는 4-1로 앞선 5회 초 선두타자 블럼에게 초구를 던지다 2-4로 추격의 발판을 허용하는 우월 솔로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블럼에 대한 경계 부족은 박찬호의 승을 날려버린 단초를 제공한 셈. 하지만, 벅 쇼월터 감독은 텍사스의 6연승을 망친 '숨은 공로(?)자'다. 스위치 히터 블럼 타석에서 좌완 에라스모 라미레스를 등판시켜, 우타석에서 상대적으로 강한 면모를 보여왔던 블럼에게 동점포를 허용케 한 장본인.

블럼의 2003시즌 좌우타석 타율을 보면, 좌타석 타율은 .135인 반면 우타석 타율은 .274로 훨씬 우타석 타율이 높았다. 즉, 박찬호에게 홈런을 맞았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제이 파월을 그대로 밀고 나갔다면, 박찬호의 승과 텍사스 6연승은 함께 건졌을 가능성이 높다.

② '알링턴 효과'를 배제한 투구

흔히들 쿠어스 필드를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일컫는다. 해발 1600m의 고원 지대인 '마일 하이 시티' 덴버에 위치하고 있어 공기 저항이 낮아져 타구의 비거리가 여타 구장보다 늘어나기 때문에 쿠어스 필드가 투수들의 무덤이라고 불려왔다.

그런데,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텍사스의 홈 구장인 알링턴 파크도 쿠어스 필드에 못지 않은, 오히려 더 극심한 투수들의 무덤이란 결과가 2003시즌에 산출됐다. 스타디움 스태츠(Stadium Stats)에 의하면 2003시즌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들의 무덤은 쿠어스 필드가 아니라, 텍사스의 알링턴 파크였다. 2003 시즌 알링턴 파크에서 기록된 '구장 평균자책'은 5.86으로 2위인 쿠어스 필드의 5.63을 누르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했다.

2004시즌에도 얼마 전까지 '투수들의 무덤' 1위였지만, 최근 쿠어스 필드에서 난타전이 벌어지면서 쿠어스 필드가 그 영광(?)을 되찾아 간 것. 2004시즌에는 최근 난타전 덕택에 쿠어스 필드가 6.48을 기록, 6.19를 기록한 알링턴 파크를 제치고 다시 1위로 올라섰다.

이날 경기에서 박찬호에게 아쉬움이 남는 부분은 홈런 공장 알링턴 파크에서 솔로포 3방으로 3실점을 고스란히 내준 것. 이 부분은 분명 알링턴 효과를 고려했어야 할 박찬호 자신이 책임질 부분이다. 게다가, 솔로포 3방 모두 우측 담장을 넘어갔다는 점에서 알링턴 파크의 특성인 '라이트 필드의 상승 기류'를 입력시키고 투구했어야 할 박찬호에겐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1회 초 훌리오 루고의 평범한 타구가 상승기류의 영향으로 홈런으로 연결되던 순간, 박찬호는 좌타자 몸쪽 승부에 평소 이상의 집중력을 요해야 한다는 사실을 간파했어야만 했다. 물론, 3회 초까지는 이 부분에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지만, 4-1로 승기를 잡은 이후 박찬호의 집중력은 저하되고 말았다.

4-1로 승기를 확실히 잡은 5회 초 선두타자 저프 블럼에게 초구 솔로포를 허용했다는 부분과 6회 2사 후 퀄리티 스타트를 위한 아웃 카운트 단 1개를 남겨둔 상황에서 티노 마르티네스에게 3-4 추격을 허용하는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는 부분은 다시 한 번 복기해야 할 부분이다.

최근 몇 경기에서 고비를 넘지못하고 마지막 고비를 넘기지 못하는 박찬호의 투구 패턴이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퀄리티 스타트를 위해 아웃 카운트 한 개를 남겨두고 강판당해, 퀄리티 스타트에 실패했다는 부분도 상당히 아쉬움이 남는 부분.

5일 만의 선발 등판

박찬호의 최근 부진은 불규칙적인 등판에서 야기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5일 로테이션일 때 가장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했던 박찬호의 입장에서 연속된 7일 만의 선발 등판은 '1.5 타이밍' 선발 등판에 해당하는 것.

이는 낮 경기 등판과 함께 불규칙적인 등판의 부정적 효과를 극대시켰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심리적인 부분과 간과할 수 없다. 소위 '잘 나가는 에이스' 케니 로저스와 2선발 R.A. 디키의 선발 로테이션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희생당하고 있다는 상대적 박탈감은 정상적인 신체 컨디션을 십분 발휘하지 못하게 하는 심리적 장애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

게다가, 팀 최고 연봉자로서의 자존심도 다소 상처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결국, 로테이션 간격의 문제는 바이오 리듬상의 문제 뿐 아니라, 심리적인 스트레스와 복합 작용으로 박찬호 부활의 모래시계를 지연시킨 주된 요인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이 날 탬파베이전은 낮 경기라는 불리한 요소는 남아있었지만, 5일 간격의 정상적인 로테이션 날짜를 지켜서 등판했다는 점에서 정상적인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회 '실투의 악순환'

박찬호의 최근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부분은 1회 실점을 허용한다는 부분. 게다가, 홈런으로 실점을 허용한 후 이후 이닝에서 연속안타를 맞고 추가실점하는 과정을 반복해왔다는 사실이다.

트로이 글로스(3점)-카를로스 벨트란(1점)-훌리오 루고(1점) 모두 1회에 나온 홈런이다. 이는 경기 초반 주도권을 상대팀에게 내준 홈런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탬파베이전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루고의 홈런으로 불안한 출발을 보인 박찬호는 2회 초 무사 1,2루 상황에서 탬파베이 8번 브룩 포다이스를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3루 도루를 시도하던 2루 주자 티노 마르티네스를 3루에서 잡아내 더블 아웃으로 위기를 넘겼다.

이후 9번타자 저프 블럼을 연속 삼진으로 낚아내면서 박찬호는 초반 대량실점의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팀 타선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는 2회 말 마크 텍세이라의 중월 솔로포로 즉각 나타났다. 역시 마운드에서의 안정감은 타선의 집중력으로 승화되는 게 일반적인 현상이며 필드의 불문율인 셈.

경기 초반 승부처 - 과감한 몸쪽 라이징 패스트볼 승부

박찬호가 완벽한 부활모드로 가동되었다고 볼 수 없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팀 타선의 득점 이후 곧바로 실점하는 최악의 투구패턴을 보였다는 점이다. 이 날도 그런 기미가 그대로 나타났다. 2회 말 텍세이라의 동점 솔로포가 나온 후, 이은 3회 초 공격에서 선두타자 칼 크로포드에게 우중간을 꿰뚫는 3루타를 허용, 무사 3루의 위기를 다시 만들어 준 것.

탬파베이 중심타선으로 연결돼 실점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박찬호는 이 순간만큼은 집중력을 발휘하며 승부했다. 전 타석에서 홈런을 허용한 루고를 3루 땅볼로 잡아낸 뒤, 3번 허프에게 초구 몸쪽 라이징 패스트볼로 유격수 플라이로 처리, 무사 3루 상황을 2사 3루로 급반전시켰다.

이후, 4번 호세 크루스 Jr에게도 다시 라이징 패스트볼로 승부수를 띄운 박찬호의 선택은 탁월했다. 크루스 Jr가 중견수 플라이로 물러나 실점없이 경기 초반 최대 위기를 넘어선 것이다. 이는 몸쪽으로의 과감한 승부수를 띄운 게 주효했다고 볼 수 있다.

박찬호의 '데드 포인트는 75구'

마라톤에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사점(死点) 즉, 데드 포인트가 있다. 이 지점을 넘어서게 되면 고통이 사라지고 몸이 한결 가벼워져서 완주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박찬호의 경우도 데드 포인트가 존재한다. 바로 75구다. 61구에서 75구 사이에서의 피안타율은 무려 .476에 이른다. 이는 거의 두 타자 중 한 타자에게 안타를 허용한다는 엄청난 수치다. 하지만, 76구에서 90구 사이의 피안타율은 .200에 불과하다.

즉, 올 시즌 박찬호는 투구수로는 75구를 넘어서면 소위 퀄리티 스타트(Quality Start)가 가능하고 75구 이전 상황에서 연타를 허용하며 대량 실점, 초반 강판의 빌미를 스스로 제공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텍세이라 '북치고 장구치고'

랜스 닉스가 찬호 투구 도우미로 새롭게 등록되었다면, 텍세이라는 찬호 '승리 도우미'로 등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 2회 말 0-1로 뒤지던 초반 승부 흐름에서 동점 솔로포를 터트려 위축될 우려가 있던 박찬호의 투구에 생명력을 불어 넣었으며 3회 2사 1,3루 상황에서 박찬호의 1루 견제 악송구를 점프하면서 잡아내 실점 위기를 넘기게 된 것.

만약, 텍세이라가 이 견제구를 놓쳤더라면 3루 주자는 홈인, 1루 주자는 3루까지 가는 위기상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았다. 박찬호의 위기를 구해준 은인 텍세이라의 수비 덕택에 텍사스는 3회 말 이은 공격에서 리드를 잡는 1점을 추가, 박찬호의 투구에 힘을 불어넣었다.

경기 종반, 탬파베이의 장타력 승리

2-1로 리드를 잡은 텍사스의 4회 말 공격. 1사 후 이날 경기의 히어로 텍세이라가 삼브라노로부터 볼넷을 얻어 출루에 성공, 1사 1루의 기회를 이어갔다. 6번 데이빗 델루치가 삼진으로 물러나 2사 1루 상황에서 7번 케빈 멘치의 3루수 앞 내야안타로 2사 1,2루의 추가득점 찬스를 만들어냈다.

8번 랜스 닉스가 볼넷을 골라 2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가 텍사스에게 찾아왔다. 타석에는 9번 포수 제랄드 레이어드. 레이어드는 삼브라노의 초구를 2타점짜리 중전 적시타로 연결시키며 4-1로 달아나 박찬호의 승리를 공ㆍ수 양면에서 지원했다.

하지만, 탬파베이의 저력은 1-4로 뒤진 5회 초 부터 시작됐다. 5회 초 선두타자 저프 블럼이 초구를 노려쳐 알링턴 파크의 우측 담장을 넘기는 솔로포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한 뒤 6회 2사 후 티노 마르티네스의 솔로 아치가 또 작렬, 경기 중반 박빙의 승부를 연출한 것.

이 홈런 두방이 탬파베이 승리의 발판이 된 것이다. 이 날 탬파베이가 텍사스 투수로부터 뽑아낸 5점은 모두 솔로 홈런 5방에서 나왔다. 대포 대결에서 텍사스를 눌렀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우측 담장을 넘긴 홈런이 4개로 홈 팀 텍사스보다 오히려 알링턴 파크의 특성을 더 적절하게 이용한 게 또 다른 승리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이날 탬파베이 공격 선봉은 블럼과 마르티네스. 박찬호의 '천적' 블럼이 홈런 2방, 티노 마르티네스가 6회 초 박찬호로부터 홈런을 뽑아낸 뒤 9회 초 제프 넬슨으로부터 다시 결승 솔로포를 뽑아내 텍사스의 6연승을 대포로 저지한 결과가 되고 말았다.

박찬호, 4-5월을 황금 분할하라

어두웠던 과거 4월은 가고, 화려한 '계절의 황제' 5월이 박찬호 앞에 펼쳐질 것인지가 주목받는 하루였다. 탬파베이전은 박찬호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전환점이라는 점에서 국내팬들은 물론, 박찬호 개인적으로도 상당히 중요한 승부처로 판단되었을 것이다.

경기 전까지 17승으로 메이저리그 최다 승을 기록중인 텍사스의 상승 페이스는 그야말로 초절정 상태. 팀 분위기상으로도 황금 분할을 시작할 최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솔로포 5방에 의해 텍사스의 연승 행진은 5에서 종료됐고 박찬호도 시즌 2승에 실패했다.

텍사스의 목표는 '지구 우승과 포스트 시즌 진출'이다. 이를 염두에 두고 탐 힉스 구단주가 선발 요원의 추가 영입을 검토한다고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바로, 4,5 선발의 영입을 검토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만약, 박찬호가 4월과 5월을 구분지을 수 없는 투구가 지속된다면, 박찬호에겐 텍사스에서 포스트시즌을 맞을 수 없을지도 모를 일. 박찬호가 현재 처한 마운드의 위기가 아니라, '클럽 하우스의 위기'로 비화될 가능성은 상존한다.

현재 박찬호의 최대 화두는 바로 4월과 5월을 황금 분할하는 것이다. 만약 4월과 5월 성적에 구분할 만한 가시적인 성과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텍사스에서의 박찬호의 장밋빛 미래를 더 이상 낙관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너무 잘나가는 텍사스가 오히려 박찬호에겐 부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일동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sp5dnlw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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