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감독의 자존심은 실로 대단하다. 심판원들이 스트라이크 볼 판정에 대한 시비를 용납하지 않듯 감독들은 선수단 운용만큼은 자신의 고유권한이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최희섭의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플로리다의 존 맥키언 감독에 대해선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할까봐 백번 양보해도 그의 생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희섭은 올해 절정의 한 해를 보내고 있다. 이제 풀타임 2년차의 젊은 선수가 불과 86타수 만에 9홈런에 20타점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경이롭다. 지금은 많이 떨어졌지만 4월까지만 해도 7타수에 홈런 1개씩을 날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마니아칼럼▼ |
그러나 성적과는 달리 현실은 어떤가. 최희섭은 매 경기 상대 선발이 누군지 걱정해야 하는 딱한 형편이다. 맥키언 감독의 고집스러울 만치 철저한 ‘플래툰 시스템’은 왼손 투수만 나오면 영락없이 최희섭을 벤치로 불러들이기 때문이다.
최희섭은 올 들어 왼손 투수를 상대로는 고작 4타수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또 팀의 31경기 중 2경기는 아예 나오지도 못했고 7경기는 후반에 대타나 대수비로 교체 투입됐다. 모두 왼손 선발이 나온 경기였다.
어느 타자든 마찬가지겠지만 최희섭의 성적도 선발 출장이냐 아니냐에 따라 큰 차이가 난다. 9홈런은 모두 선발 경기에서 나왔다. 지난달 29일 콜로라도전에서 9회 왼손투수를 상대로 친 홈런도 선발 경기다. 반면 교체 투입됐을 때는 9타수 2안타에 삼진 5개로 아주 나쁘다.
이와 함께 플로리다는 최희섭이 선발 1루수로 활약한 경기는 15승7패로 승률이 0.682에 이른다. 이는 전체 승률 0.581(18승13패)에 비해 1할 이상 높다. 반면 최희섭이 선발명단에서 빠진 경기는 3승6패로 승률 0.333에 그쳤다.
최희섭이 왼손투수에게 약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교체 1루수였던 시카고 컵스 시절에는 왼손투수를 상대로 21타수 1안타로 타율이 0.048에 머물렀다.
그러나 이젠 사정이 다르다. 최희섭은 플로리다의 미래를 짊어진 차세대 주역이다. 최희섭 본인이 왼손투수에 대한 경쟁력을 키워야 하는 게 우선이지만 감독도 이를 도와줄 의무가 있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팀 성적도 최희섭이 선발로 나갔을 때 훨씬 높지 않은가.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