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사태가 심상찮아… 미국인임을 숨겨!”

  • 입력 2004년 5월 10일 18시 29분


2000시드니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모리스 그린(오른쪽 두번째) 등 미국 선수들이 성조기를 활짝 편 채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이런 행동이 반미 감정을 촉발할 것을 우려해 특별예절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진제공 뉴욕타임스
2000시드니올림픽 육상 남자 4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따낸 모리스 그린(오른쪽 두번째) 등 미국 선수들이 성조기를 활짝 편 채 우승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아테네올림픽을 앞두고 미국올림픽위원회는 이런 행동이 반미 감정을 촉발할 것을 우려해 특별예절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사진제공 뉴욕타임스
“미국인임을 다른 사람에게 알리지 마라.”

미국올림픽위원회(USOC)가 최근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할 자국 선수들을 대상으로 특별 ‘에티켓 교육’을 실시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9일자 뉴욕 타임스는 선수들의 행동 강령으로 볼 수 있는 이 교육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미국인임을 과시하지 말고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이 조치는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견지했던 일방주의적인 외교 정책과 이라크 전쟁, 그리고 최근 이라크 포로 학대 문제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인들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분위기에서 미국 스포츠계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

USOC의 윌리엄 C 마틴 회장은 “올림픽에서 우리 선수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며 “(아테네올림픽은) 매우 긴장된 분위기가 될 것이며 이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미국 스포츠 사상 유례가 없는 이 예절 교육에 대해 미국 스포츠계 인사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상 미국인들이 외국에서 이렇게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미움을 받았던 적이 없었다”는 USOC의 생각에 누구나 동조하고 있으며 일부 선수들의 ‘생각 없는 행동’이 동료선수들의 생명까지 위협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

예절 교육 내용은 과거 미국 선수들의 무의식적인 행동이 관중들의 비난을 받았던 전례를 토대로 종목 별로 조금씩 다를 것으로 보인다.

수영 선수들에게는 ‘수영장에 침 뱉지 말기’가 강조될 예정.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는 아미 반 다이켄이 여자계영 400m경기 전 라이벌 선수를 위협하기 위해 그 선수의 레인에 침을 뱉었다가 비난을 받은 적이 있었다.

또 육상 선수들에게는 성조기 무늬의 유니폼을 입는 것은 물론 승리를 자축하면서 성조기로 몸을 두르는 행동을 자제하도록 주문할 예정. 뉴욕타임스는 88년 서울올림픽 때 미국 선수들이 입었던 옷에 적힌 ‘하이 맘(Hi, Mom)’이라는 문구가 한국인들에게 모욕감을 줬던 전례가 있다고 전했다.

튀는 행동으로 유명한 농구 드림팀 선수들에게는 “상대 선수를 모욕하거나 깔보는 행동을 하지 말라”고 강조할 예정.

뉴욕타임스는 “자신을 낮추는 것은 미국 스포츠 문화와는 반대되는 것이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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