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축구]이라크 축구 ‘기적의 티켓’… 골득실로 극적 아테네행

  • 입력 2004년 5월 13일 18시 22분


13일(한국시간) 요르단 암만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아테네 올림픽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둔 이라크 선수들의 표정은 결연했다.

이라크는 이 경기 전까지 2승3패(승점 6)로 C조 3위. 조 1위에만 주어지는 올림픽 출전권을 딸 가능성은 희박했다. 이라크는 이 경기를 반드시 이기고 조 1, 2위 오만(2승2무1패)과 쿠웨이트(2승1무2패)가 비겨 골 득실을 따져야 하는 상황.

그러나 기적이 일어났다.

이라크가 사우디를 3-1로 꺾었고, 오만과 쿠웨이트는 0-0으로 비긴 것. 이라크는 골 득실에서 3골을 앞서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본선무대를 밟게 됐다.

경기도 극적이었다. 이라크는 전반 21분 사우디의 알 비시에게 선제골을 허용했다.

그러나 전쟁으로 경기장 시설이 부서져 제대로 연습조차 하지 못했던 선수들은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하이다르 하산이 전반 27분 동점골을 뽑았다. 후반에도 이라크는 2골을 더 넣었다. 경기 종료 뒤 전해온 오만-쿠웨이트전의 결과는 0-0 무승부. 이라크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기쁨의 눈물을 쏟았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데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불안한 정국 속에서 시아파, 수니파 등으로 뿔뿔이 갈라졌던 이라크는 이 경기를 통해 하나가 됐다. 이라크인들은 소총을 집어들고 거리로 뛰쳐나와 축포를 쏘아댔고 바그다드의 하늘은 30분 동안 줄줄이 발사된 예광탄 불꽃으로 붉게 물들었다.

전날부터 “우리 팀이 이기고 쿠웨이트와 오만이 비기는 기적이 일어나도록 신에게 기도하자”는 글이 끊이지 않았던 인터넷 ‘이라크 스포츠 포럼’(www.aliraqi.org) 게시판에는 이라크 올림픽대표 선수들을 칭송하는 글이 쏟아졌다. 이웃나라 아랍인들의 축하 메시지도 속속 게시됐다. 한 이라크 축구팬은 “아랍 형제들의 축하에 감사하고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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