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이하 한국시간) 텍사스의 홈구장인 아메리퀘스트 필드(전 알링턴 파크)에서 벌어진 대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리턴 매치에 선발로 등판, 시즌 3승과 2연승에 도전장을 던졌지만 대포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박찬호는 이 날 6.2이닝 동안 4피안타 5실점(5자책점) 7사사구를 기록, 시즌 4패째(2승)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은 5.65에서 5.80으로 높아졌다. 117개의 투구수를 기록한 박찬호는 69개의 스트라이크를 던졌다. 표면적인 기록만으로는 제구력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주요한 상황에서 볼넷과 몸에 맞는 볼을 연속 허용한게 화근. 호투하던 7회 초 2사 후 볼넷과 몸에 맞는 공에 이어 통한의 3점포를 허용한 빌미를 제공한 것도 바로 사사구라는 점. 사사구와 홈런이 바로 박찬호의 3승 도전에 발목을 잡은 주범이라고 볼 수 있다.
'찬호-레이어드' 호흡 불일치 - 실투로 직결
앞서 말한 경기 초반 대포를 허용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났지만 또 다른 문제점인 대포 한 방의 우려는 말끔히 씻어내지 못했다는 사실. 이 점은 초반 박찬호의 위기와 직결됐다. 4회 초까지 박찬호가 캔자스시티 타자에게 허용한 안타 갯수는 단 3개. 대단한 호투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그 3개의 안타 중에서 2개가 홈런이었다는 사실은 여전한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3회 1사 상황에서 2003시즌 내셔널리그 신인왕 앙헬 베로아를 맞아 2-3 풀 카운트 상황에서 포수 제랄드 레이어드는 아웃 사이드 낮은 쪽을 요구했지만 박찬호의 공은 몸쪽으로 들어갔다.
베로아의 스윙은 날렵하게 돌아갔고 아메리퀘스트 필드의 좌측 폴대 근처로 날아가는 선제 솔로포로 이어졌다. 박찬호의 실투는 4회 '제 2의 빅허트' 켄 하비를 상대했을 때도 그대로 재연됐다.
하비를 2-0 상황까지 유리하게 전개시킨 상황에서 박찬호는 레이어드가 요구한 아웃 사이드 브레이킹 볼이 아니라 몸쪽으로 성급하게 승부하다가 하비에게 좌중월 솔로포를 다시 허용한 것. 레이어드가 요구한 외각 코스로 제구만 됐더라면 이 날 두개의 솔로 홈런은 나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이 날 실투의 절정은 바로 7회 초에서 터져 나왔다. 7회 2사까지 순조롭게 처리한 박찬호는 캔자스시티 중심타선을 상대하면서 다소 냉정을 잃은 게 화근. 2번 벨트란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3번 스위니를 몸에 맞혀 1루로 내보내 2사 1,2루 위기를 맞은 뒤 '타점 머신' 곤살레스를 상대로 던진 슬라이더가 한 가운데로 몰리면서 통한의 3점포를 맞고 강판당하는 불운을 겪어야만 했다.
5개의 피안타 중 '홈런 3방'
실투에 이은 홈런도 박찬호의 3승행에 발목을 잡은 원인으로 꼽을 수 있지만, 5개의 안타 중 3개가 홈런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은 한번 되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임에 틀림없다. 박찬호가 아니라 제 아무리 뛰어난 투수라고 할지라도 5개의 피안타 중 3개가 홈런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승리를 장담하기 어렵다.
박찬호가 향후 경기에서 승리를 거머쥐기 위해선 일단 피홈런에 대한 적절한 대응책이 강구되어야 할 듯. 기존의 두 가지 숙제 중 하나였던 '1회 실점'이라는 과제는 이 날 경기를 통해 해결책을 마련한 듯 보이지만, 홈런에 의한 실점이라는 부분은 시즌 내내 여전히 안고가야 할 문제점으로 지적할 수 있다.
아메리퀘스트 필드와의 첫 대면
알링턴 파크에서 아메리퀘스트 필드로 구장 명칭이 변경된 후 치른 첫 경기에서 박찬호는 그리 좋지 않은 인상을 받은 듯 싶다. 박찬호의 이 날 투구를 분석해 볼 때 가장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바로 아메리퀘스트 필드의 우측 외야에서 발생하는 상승기류였다.
상승 기류의 노이로제에 사로 잡힌 박찬호는 베로아와 하비를 상대로 레이어드가 요구한 아웃 사이드 볼배합을 거부하고 우타자 몸쪽으로 정면 승부를 건 게 이 날 또 다른 패배의 단초를 제공한 셈. 즉, 박찬호가 아메리퀘스트 필드의 장단점을 너무 치밀하게 분석, 자신의 투구 패턴에 반영한 게 스스로 무덤을 판 결과가 되고 만 것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신축적으로 운영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게다가, 카를로스 벨트란에게 지나치게 집중견제를 하다, 7번 타선에 잠복한 켄 하비에게 불의의 일격을 허용한 것은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기는 부분. 지난 4월 29일 캔자스시티전에서 벨트란에 무너졌지만, 하비는 완벽하게 봉쇄했지만, 이 날은 정반대의 결과가 도출된 것.
'4경기 연속 1회 실점' 종료
비록 시즌 3승에 실패했지만, 이 경기를 통해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 그 근거는 바로 초반 승부에 집중력을 높였다는 사실.
박찬호의 2004년 최대 고민거리는 '1회 실점의 악순환'이었다. 4경기 연속 1회 실점의 악순환이 지속된 것. 게다가, 실점도 모두 홈런포로 허용했다는 불안한 징크스를 가지고 있던 박찬호였다.
트로이 글로스(4월 23일 애너하임 에인절스전, 3점)-카를로스 벨트란(4월 29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 1점)-훌리오 루고(5월 5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전, 1점)-티노 마르티네스(5월 13일 탬파베이 데블레이스전, 2점)등, 1회 홈런은 박찬호가 경기 주도권을 잡지 못하고 끌려가는 경기를 만들어 준 빌미로 작용해왔다.
하지만, 캔자스시티와의 리턴 매치에서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듯 싶다. 1회 초 수비에서 선두타자 앙헬 베로아를 3루 땅볼로, 2번 '스위치 본즈' 카를로스 벨트란을 1루수 파울 플라이로 잡아낸 뒤, 3번 마이크 스위니에게 우전안타를 맞았지만 4번 '타점 머신' 후안 곤살레스를 중견수 플라이로 잡아내 1회를 쉽게 마무리했다.
2회 초에도 박찬호는 5번 조 랜다-6번 켄 하비-7번 베니토 산티아고를 나란히 삼자 범퇴로 처리, 지긋지긋한 4경기 연속 1회 홈런 허용의 징크스를 벗어난 동시에 경기 초반 실점이라는 무거운 짐을 던졌다는 데 이 날 경기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침묵한 타선에도 문제
'좌완' 지미 고블을 상대로 6회까지 단 1점만을 뽑아낸 텍사스 타선도 문제였다. 이전 경기까지 활화산같은 타격을 자랑하던 텍사스는 박찬호가 의외로 호투하자 오히려 침묵하는 양상을 보인 게 또 다른 패인으로 볼 수 있다.
4회 말에 터진 행크 블레이락의 솔로 홈런 외에는 이렇다 할 파괴력을 보이지 못한 팀타선의 허약한 타격지원이 초반 호투하던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만들어주지 못한 것. 게다가, 고블을 상대로 공격의 물꼬를 틔웠어야 할 텍사스 우타자들, 알폰소 소리아노- 허버트 페리-케빈 멘치등이 무안타로 고블에 농락당한 게 더 큰 문제였다.
특히, 1-2로 뒤지고 있던 6회 말 1사 1,2루의 역전 찬스에서 소리아노가 초구를 건드려 3루 땅볼로 물러난 뒤, 페리가 유격수 땅볼로 물러난 게 이 날 경기를 복기할 때 가장 아쉬운 대목. 이은 7회 초 타선의 지원을 받지 못한 박찬호는 2사 후 곤살레스의 3점포에 허무하게 마운드에서 강판당하고 만 것이다.
찬호, '파랑새'를 봤다
비록 홈런포 3방에 패전을 기록했지만, 경기 초반 보여준 안정감 넘치는 투구는 보는 이에게 편안한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야말로 올 시즌 8차례 선발 등판 중에서 가장 안정감있는 초반 승부를 펼친 셈.
이는 심리적으로 박찬호가 안정감을 되찾아가고 있다는 사실의 방증이다. 만약, 텍사스 강타선이 초반 폭발한다면, 박찬호는 의외로 편한 상태에서 마운드 운용을 가져갈 수 있다는 사실. 박찬호에겐 향후 경기에서 어둠보다는 희망의 파랑새를 본 셈이다.
최근 3할대 팀 타율에서 다소 주춤, .288의 팀 타율을 기록하고 있는 텍사스지만 여전히 리그 최강의 화력지원이 박찬호의 등 뒤에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 박찬호가 초반 호투를 하면 언제든지 승수 추가가 가능한 상황이다.
게다가, 선발 요원인 콜비 루이스가 우측 어깨 회전근 부상으로 DL에 올라 장기간 마운드 복귀가 불투명한 상황이라는 점 또한 박찬호의 '경기 초반 호투'라는 호재와 동반 상승효과를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비록 패를 기록했지만, 박찬호의 미래는 결코 어둡지 않다는 게 개인적인 견해다. 패배에 가리워진 그림자 사이로 박찬호는 희망의 '파랑새'를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일동 동아닷컴 스포츠리포터 sp5dnlwm@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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