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유∼. 코치는 무슨. 아직 어색해요.”
“그럼. 새 신랑은 어때요.”
짓궂은 질문에 쑥스러운 듯 흰 이를 드러낸 채 활짝 웃는다. 참 티 없는 웃음이다. 정말 저 사람이 30년 가까이 피 말리는 승부의 세계를 지켜왔던 ‘코트의 마법사’일까.
한국 농구 최고의 가드 강동희(38·LG). 은퇴 발표를 하고 1주일 만인 지난 주말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넉넉해 보였다. “며칠 사이 몸이 불어난 것 같아 보이죠. 큰 짐 하나 벗어 던지니 홀가분해져서 그런가.”
강동희는 28년 동안 정들었던 농구공을 내려놓고 LG코치로 변신했다. 우선 갑작스럽게 코트를 떠날 결심을 하게 된 이유가 궁금했다. “은퇴할까 더 뛸까를 놓고 고심했어요.”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밤잠을 못 이뤄 술잔을 기울이는 날이 잦아졌고 은사와 선배들을 찾아 숱하게 조언을 구했다. “여태 해온 일을 놓는다는 게 쉽지는 않았죠. 앞으로 몇 년 더 잘 해낼 자신도 있었고요. 주위에서 서운해 하는 분들도 많고.”
하지만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에 선수에 집착하다 다치거나 후보로 밀려나면 추해 보일 수 있다는 것. 후배들을 위해 길을 열어주는 것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강산이 3번 변할 긴 세월 동안 코트를 누빈 강동희. 지난날을 돌아보면 많은 일들이 머리 속을 스쳐간다. 열 살이던 인천 송림초등학교 4학년 때 특별활동시간에 처음 농구공을 잡았다. 송도중에 입학해서는 키가 작다는 이유로 1년 넘게 농구를 그만두고 서울대 체육과를 목표로 공부에 매달려 반에서 상위권의 성적을 냈다. 농구와는 영 인연이 멀어지는 듯 했다.
그러나 운명은 강동희를 다시 코트로 불러냈다. 중3 체육시간에 학교를 찾은 군부대 병사들과의 친선 농구 게임에서 눈부신 활약을 했고 바로 농구 감독의 눈에 띄어 그 길로 선수로 복귀했다. 송도고 1학년 때인 1983년 쌍용기대회 결승에서 허재가 졸업반이던 용산고와 맞붙었다. ‘실과 바늘’처럼 붙어 다닌 허재와의 첫 만남이었다. “형은 정말 잘하더군요. 비록 우리는 준우승에 그쳤지만 나도 열심히 해서 언젠가 같이 뛰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됐어요.”
86년 중앙대에 입학하면서 2년 선배 허재와 힘을 합쳐 캠퍼스 코트를 평정했고 실업팀 기아의 전성기를 주도했다. 프로가 출범한 97년은 강동희 농구의 최고 전성기. 기아를 원년 챔피언으로 끌어 올리며 정규리그와 플레이오프 최우수선수를 휩쓸었고 그해 여름엔 국가대표로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을 28년 만에 정상으로 이끌었다.
화려한 경력 속에서 그는 한편으론 허재의 그늘에 가려 2인자에 머물렀다는 평가를 들었다. 대학과 성인무대를 통틀어 20년 가까이 한솥밥을 먹은 허재가 특유의 카리스마와 반항적인 성격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반면 강동희는 그저 참모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는 것. 성대한 은퇴경기를 치르며 이달 초 코트를 떠난 허재와 달리 조용히 은퇴를 발표한 대목도 그랬다.
그러나 정작 강동희의 생각은 다르다. “허재 형과는 그릇이 달라요. 내가 더 잘했다면 주도권을 잡았겠죠. 같은 시대를 걸으며 함께 컸다고 봐요. 손해를 보거나 빛에 가린 건 아니에요.” 원래 공격형 가드였으나 허재와 한솥밥을 먹게 되면서 득점력 보다는 어시스트 능력을 갖춘 포인트 가드로 변신해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게 그의 말. 서로의 발전을 위한 동반자 관계였다는 뜻.
주마등같은 화려한 과거를 뒤로한 채 지도자로 나서는 강동희는 무엇보다 ‘변화’를 강조한다. 흔히 스타 출신은 훌륭한 감독이 될 수 없다는 말도 그에게 부담이다. “선수 때야 운동만 하면 그만이었죠. 스타 의식을 버려야 좋은 지도자가 된다고 봅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달라졌다는 말을 듣도록 노력할 겁니다. 좋은 스승 만나서 여기까지 왔는데 앞으론 제가 돌려줘야죠.” 선수들의 눈높이에 맞춰 마음을 열고 하나가 되는 덕장이 그의 포부.
강동희는 농구인생의 전환점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맞는다. 29일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연지동 연동교회에서 이광선씨(31)와 결혼한다. 예비신부와는 지난해 8월 선배 소개로 만났는데 첫 눈에 반했다. 서로 손을 꼭 잡고 다정스럽게 웃는 모습이 몇 년 산 부부처럼 닮아보였다. “아들 딸 하나씩 낳고 싶어요. 결혼을 하니 어깨가 무겁고 책임감도 커졌어요.”
길이 끝난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된다고 한다. 강동희는 미지의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으며 팬들에게 이런 편지를 남겼다.
‘은퇴는 저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기에 결코 두렵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도전을 통해 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것입니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강동희는…▼
▽생년월일: 1966년 12월20일
▽가족관계: 1남 2녀 가운데 막내. 29일 이광선씨(31)와 결혼
▽신체조건: 1m80, 93kg
▽포지션: 가드
▽출신교: 송림초등학교→송도중→송도고→중앙대(86학번)
▽소속팀: 기아(90년)→모비스(2001년)→LG(2002년)
▽존경하는 지도자: 고 전규삼 송도고 코치, 정봉섭 중앙대 체육부장
▽좋아하는 음식: 생선회, 분식류
▽연봉: 1억1000만원
▽주요 경력: 국가대표(87∼99년), 농구대잔치 2회 연속 준우승(중앙대), 농구대잔치 6회 연속 우승(기아)
▽주요 수상: 92농구대잔치 최우수선수, 프로농구 97시즌 정규리그, 플레이오프 통합 최우수선수, 6시즌 연속 베스트5, 어시스트상 3회, 99∼2000시즌 모범선수상
▽주요 기록: 트리플더블 3회, 프로농구 최초 2000어시스트 돌파, 통산 최다 출전(386경기), 통산 4410득점(11위), 2424어시스트(2위), 653가로채기(2위), 1070리바운드(15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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