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시즌 4승6패에 평균자책 5.40. 연봉 7억4000만원짜리 선수의 성적치곤 빈약하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서운하다. 잘 나갈 때는 별 말이 없더니 조금 안 좋으니까 손가락질을 한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매번 잘 할 수 있느냐. 연봉 많이 받는다고 매년 20승, 30승을 할 수는 없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 까지 10년 넘게 고생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건데 하루아침에 떼돈을 버는 것으로 다들 생각한다. 속이 많이 상한다. (이)상훈이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 둔 게 아니겠는가.”
정민태는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볼 스피드도 140km대 후반이고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방망이에 맞아 나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볼 끝에 힘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지만 지난해와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타자들이 워낙 잘 때린다. 이젠 내 볼에 완전히 적응을 하는 것 같다.”
김재박 감독은 그에게 “제구력이 좋아 항상 스트라이크 존에서만 공이 놀기 때문에 타자들이 배팅 포인트를 잘 찾는 것 같다”며 “볼 배합과 코스의 변화를 줘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부진해도 선발 로테이션은 무조건 지켜주겠다.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주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정민태에게 이번이 야구인생에서 세 번째 위기.
첫 번째는 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 하자마자 오른팔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아 2년간 쉬었다. 미국에서 수술 받고 돌아오자 구단에선 수술비 1800만원을 정민태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당시 정민태의 첫 해 연봉은 1200만원. 이듬해엔 1100만원을 받았다.
정민태의 연봉에서 매달 50, 60만원씩이 깎여 나갔다. 아파서 운동도 못하는데 월급이 깎여 나가는 현실이라니…. 비참했다. 정민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내가 재기하면 월급에서 깐 돈을 되돌려 달라”고 구단에 제시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93년 8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한 정민태는 구단이 환수해 간 돈을 모두 돌려받았다.
두 번째 위기는 일본에서 찾아왔다.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 정민태는 2001년과 2002년 1,2군을 전전하며 제대로 뛰질 못했다.
“조금 안 좋아도 2군으로 내려갔고 잘 던져도 2군으로 내려갔다.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승엽이가 지금 고생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코칭스태프가 수시로 폼을 뜯어 고치려 하고 참을성도 없다. 은근한 차별이 존재한다. 팬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일본에 가본 선수들은 다 안다. 한국선수들이 절대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다. ‘너희들은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그들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3년 계약으로 일본에 건너간 정민태는 마지막 1년을 참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0억원의 연봉도 포기한 채….
올해가 세 번째 위기. 그마나 팬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올 시즌에 앞서 1000만원의 자비를 들여 팬 미팅을 마련하기도 했던 정민태는 매년 팬들을 수원 홈구장으로 무료초대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팬들도 그런 정민태에게 성적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성원을 보인다.
정민태의 홈페이지(www.chung20.co.kr)에 한 팬은 이렇게 격려의 글을 남겼다.
“힘드시죠. 아마추어인 우리가 봐도 부진의 원인을 알기 힘드네요. 볼 스피드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오늘 TV를 보다가 갑자기 모 가전회사 광고가 생각나더군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빨리 잃어버린 ‘작은 차이’를 찾길 바라겠습니다.”
최근 5연패에 빠졌던 정민태는 5일 사직 롯데전에서 연패를 끊고 승리투수가 됐다.
수원=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정민태는▼
▽생년월일=1970년 3월1일
▽출신교=인천 숭의초등학교-인천 동산중-동산고-한양대
▽야구시작=초등학교 3학년(형이 야구하는 걸 보고)
▽별명=스머프
▽취미=낚시
▽인터넷 홈페이지=www.chung20.co.kr
▽가족관계=부인 이태순씨(44) 아들 선호(10) 승호(6) 2남
▽주요경력=92년 태평양 돌핀스 입단, 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2003년 현대 유니콘스 복귀
▽수상경력=다승왕 3회(99년, 2000년, 2003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98년, 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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