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페]슬럼프 고생 프로야구 최고연봉 현대 정민태

  • 입력 2004년 6월 6일 17시 45분


코멘트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최근 잇따른 부진으로 ‘먹튀’라는 눈총까지 받고 있는 한국프로스포츠 최고 연봉자 현대 투수 정민태. 그는 “하다보면 잘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며 “조만간 한국 최고의 투수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수원=박주일기자
“절대 무너지지 않습니다.” 최근 잇따른 부진으로 ‘먹튀’라는 눈총까지 받고 있는 한국프로스포츠 최고 연봉자 현대 투수 정민태. 그는 “하다보면 잘 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다”며 “조만간 한국 최고의 투수임을 당당하게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수원=박주일기자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선 야구가 유일한 탈출구였다. 4식구는 사글세방에서 살았다. 인천 초등학교 3학년 때 형을 따라 야구를 시작한 동생은 어느 때부터인가 “난 야구로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선 이 길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유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해야 된다는 생각뿐이었다.” 25년 후. 현대 정민태(35)는 ‘대한민국 최고 투수’의 자리에 올라섰다. 돈도 많이 벌고 있다. 국내에서 그보다 더 많은 연봉(7억4000만원)을 받는 스포츠 선수는 없다. 가만히 있어도 하루에 200만원 돈이 생긴다. 자가용은 벤츠 500. 성공한 뒤 부모님께 아담한 집도 선물했다. 하지만 정민태는 요즘 편치가 않다. ‘가시방석’에 앉아 있는 기분이다. 주위에선 ‘최고 연봉자가 되더니 배가 부른 것 같다’느니, ‘은퇴할 때가 됐다’느니 수군거린다.》

올 시즌 4승6패에 평균자책 5.40. 연봉 7억4000만원짜리 선수의 성적치곤 빈약하다.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지만 서운하다. 잘 나갈 때는 별 말이 없더니 조금 안 좋으니까 손가락질을 한다.

“내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매번 잘 할 수 있느냐. 연봉 많이 받는다고 매년 20승, 30승을 할 수는 없다. 이 자리에 올라오기 까지 10년 넘게 고생하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받는 건데 하루아침에 떼돈을 버는 것으로 다들 생각한다. 속이 많이 상한다. (이)상훈이도 그런 스트레스 때문에 그만 둔 게 아니겠는가.”

정민태는 지난해와 특별히 달라진 게 없다. 볼 스피드도 140km대 후반이고 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방망이에 맞아 나간다.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걸까.

“볼 끝에 힘이 떨어졌다는 얘기를 듣지만 지난해와 많이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타자들이 워낙 잘 때린다. 이젠 내 볼에 완전히 적응을 하는 것 같다.”

김재박 감독은 그에게 “제구력이 좋아 항상 스트라이크 존에서만 공이 놀기 때문에 타자들이 배팅 포인트를 잘 찾는 것 같다”며 “볼 배합과 코스의 변화를 줘보라”고 조언한다. 그러면서 “아무리 부진해도 선발 로테이션은 무조건 지켜주겠다. 마운드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만 보여주라”며 변함없는 신뢰를 보냈다.

정민태에게 이번이 야구인생에서 세 번째 위기.

첫 번째는 92년. 태평양 돌핀스에 입단 하자마자 오른팔 팔꿈치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받아 2년간 쉬었다. 미국에서 수술 받고 돌아오자 구단에선 수술비 1800만원을 정민태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당시 정민태의 첫 해 연봉은 1200만원. 이듬해엔 1100만원을 받았다.

정민태의 연봉에서 매달 50, 60만원씩이 깎여 나갔다. 아파서 운동도 못하는데 월급이 깎여 나가는 현실이라니…. 비참했다. 정민태는 이를 악물었다. 그는 “내가 재기하면 월급에서 깐 돈을 되돌려 달라”고 구단에 제시했고 이는 받아들여졌다.

93년 8승을 거두며 재기에 성공한 정민태는 구단이 환수해 간 돈을 모두 돌려받았다.

두 번째 위기는 일본에서 찾아왔다. 일본 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게 된 정민태는 2001년과 2002년 1,2군을 전전하며 제대로 뛰질 못했다.

“조금 안 좋아도 2군으로 내려갔고 잘 던져도 2군으로 내려갔다.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 (이)승엽이가 지금 고생하는 부분도 마찬가지다. 코칭스태프가 수시로 폼을 뜯어 고치려 하고 참을성도 없다. 은근한 차별이 존재한다. 팬들은 이해 못하겠지만 일본에 가본 선수들은 다 안다. 한국선수들이 절대 실력이 모자란 게 아니다. ‘너희들은 한 수 아래’라는 생각이 그들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3년 계약으로 일본에 건너간 정민태는 마지막 1년을 참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10억원의 연봉도 포기한 채….

올해가 세 번째 위기. 그마나 팬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올 시즌에 앞서 1000만원의 자비를 들여 팬 미팅을 마련하기도 했던 정민태는 매년 팬들을 수원 홈구장으로 무료초대할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다. 팬들도 그런 정민태에게 성적에 상관없이 변함없는 성원을 보인다.

정민태의 홈페이지(www.chung20.co.kr)에 한 팬은 이렇게 격려의 글을 남겼다.

“힘드시죠. 아마추어인 우리가 봐도 부진의 원인을 알기 힘드네요. 볼 스피드가 떨어진 것도 아닌데…. 오늘 TV를 보다가 갑자기 모 가전회사 광고가 생각나더군요.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든다’. 빨리 잃어버린 ‘작은 차이’를 찾길 바라겠습니다.”

최근 5연패에 빠졌던 정민태는 5일 사직 롯데전에서 연패를 끊고 승리투수가 됐다.

수원=김상수기자 ssoo@donga.com

▼정민태는▼

▽생년월일=1970년 3월1일

▽출신교=인천 숭의초등학교-인천 동산중-동산고-한양대

▽야구시작=초등학교 3학년(형이 야구하는 걸 보고)

▽별명=스머프

▽취미=낚시

▽인터넷 홈페이지=www.chung20.co.kr

▽가족관계=부인 이태순씨(44) 아들 선호(10) 승호(6) 2남

▽주요경력=92년 태평양 돌핀스 입단, 96년부터 현대 유니콘스, 2001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자이언츠 입단, 2003년 현대 유니콘스 복귀

▽수상경력=다승왕 3회(99년, 2000년, 2003년),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98년, 2003년)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