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소리치며 두드리며 춤추며 경기에 불을 질러라

  • 입력 2004년 6월 9일 17시 39분


‘소리와 시각효과의 과학’이 동원되는 프로스포츠 응원현장. 지난 4월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3만여명의 야구팬들이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신나는 응원을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소리와 시각효과의 과학’이 동원되는 프로스포츠 응원현장. 지난 4월4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3만여명의 야구팬들이 치어리더의 율동에 맞춰 신나는 응원을 펼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음라는 ‘두∼둥’하는 단순한 2음정의 음향과, 이를 신호로 관중들이 ‘디∼펜스(defence·수비)’하고 연호하는 것이 전부였다.

미국프로농구(NBA) 경기에서 벌어지는 응원 얘기다. 그러나 요즘은 다르다. 경기 때마다 장내에서는 ‘소리의 향연’이 펼쳐진다.

지난달 29일 미시건주 어번힐스 경기장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피스턴스와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동부콘퍼런스 결승 4차전. 홈 팀인 디트로이트 선수가 3점 슛을 터뜨리자 경기장 스피커에서는 ‘피이융∼’하는 포탄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힘들게 필드골을 성공시키자 이번에는 ‘추욱 추욱 추욱’하는 강렬한 금속 압착기 소리와 기차 기적소리가 경기장을 뒤흔들었다. 디트로이트가 멋진 덩크슛을 터뜨리자 ‘에에에엥∼’하는 사이렌 소리가 경기장 전체에 내려앉았다.

NBA에서는 1990년대 초반 까지만 해도 관중들 사이에 소음으로 선수들의 플레이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신사협정’이 있었다. 그러나 인디애나 페이서스의 경기장 여흥 담당 국장이었던 제프 스칼프가 1994년 처음으로 경기용 자동차의 엔진소리를 응원에 도입하자 관중들과 선수들은 이 강력한 소리에 환호했고 이후 경기장은 소리의 각축장으로 변했다.

○음향 개발에 전문가까지 동원

현재 NBA 각 구단은 시즌을 앞두고 관중과 선수들을 흥분시킬 새로운 음향을 개발하기 위해 음향 기술자를 따로 두고 있다.

국내 프로농구단도 3∼4년 전부터 NBA를 따라가는 추세. 원주 TG삼보의 응원 담당인 손상현 대리는 “매 시즌 전 음향 전문 업체에 외주를 줘 10가지 정도의 응원 음악을 만든 뒤 경기 때 5, 6가지 정도를 선택해 틀어준다”고 말했다. 이 음악들은 주로 각종 음향을 빠른 템포로 믹싱(mixing)한 것.

국내 프로야구에서는 프로농구에 응원 음악이 쓰이기 시작한 것과 비슷한 시기에 ‘선수 테마송’이라는 응원 방식이 도입됐다. 테마송은 타자들이 타석에 들어가기 바로 직전 이 선수가 좋아하는 음악을 스피커를 통해 들려주는 것. 두산 베어스 응원단장 송창훈씨는 “시즌 전에 구단으로부터 선수들의 희망곡을 받는다”며 “선수들마다 선호하는 음악의 장르도 다양하다”고 말했다.

이승엽이 99년 54홈런 신기록을 세울 때는 엄정화의 ‘페스티발’을, 지난해 56개의 아시아 신기록을 작성할 때는 김진표의 ‘아직 못 다한 이야기’가 흘러 나왔다.

○응원 속에 숨은 과학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의 배명진 교수(소리공학 박사)는 “응원에 동원되는 각종 음향들이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고전적인 응원 도구인 북과 꽹과리를 예로 들어보자.

배 교수에 따르면 북 소리의 주파수는 80Hz. 1초에 80번 진동하는 이 저음의 소리는 주위의 것들을 공명시킨다. 응원 현장에서 북 소리는 관중들의 몸을 진동시켜 덩실덩실 흥을 돋우고, 개인들을 하나로 묶어 일체감을 자아낸다.

꽹과리는 주파수 1100Hz의 날카로운 고음을 낸다. 주파수가 높으면 소리가 멀리까지 전달되고, 듣는 사람을 불편하게 해 심리적으로 위압감을 주는 효과가 있다. NBA에서 엔진소리, 사이렌 소리처럼 고음의 금속성 음향을 사용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이다. 이에 비해 포탄 떨어지는 소리는 음대역이 낮은 음에서 높은 음까지 길게 걸쳐져 있어 듣는 사람들을 진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스포츠심리학에서는 응원이 각성, 즉 ‘정신 차리게’하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한다. 중앙대 스포츠과학연구소 김병준 박사는 “신체적으로 피로해지면 정신 상태도 흐릿해지고 집중도가 떨어지는데 우호적 응원은 이럴 때 낮아진 각성 수준을 다시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특히 조그만 실수 하나가 승패를 판가름할 수 있는 박빙의 승부에서 응원은 큰 차이를 만든다는 것이다. 반면 야유처럼 적대적 응원은 각성 수준을 지나치게 높여 시야를 좁게 만든다.

선수가 좋아하는 음악을 플레이 전에 틀어주는 ‘테마송’은 긴장을 풀어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선수들이 익숙한 것에 많이 노출시킬수록 평소의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

반면 평소와 다른 낯선 환경은 사람을 위축시킨다. 양궁 국가대표팀이 중요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가상 소음’ 훈련을 하는 것은 훈련장과 실전 상황을 비슷하게 만들어 실전에서 제 기량을 발휘하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

국내 프로야구 상위 타자들의 테마송 (6월 8일)
타격순위이름소속곡 명
1브룸바현대‘히어 아이 고(Here I go·팝송)’
2이진영SK영화 맥가이버 주제가
3이영우한화DJ. Doc ‘스트리트 라이프’
4정경배SK봄여름가을겨울 ‘브라보 마이 라이프’
5김태균한화‘당근송(코믹하게 만든 노래)’
6데이비스한화힙합 인기곡 ‘솔트 셰이커(Salt Shaker)’
7양준혁삼성없음
8김기태SK만화 태권브이 주제가
9박용택LG에어 ‘섹시보이(sexy boy)’
10김동주두산‘브리트니 스피어스 ‘탁시(toxi)’
11페레즈롯데라틴음악 ‘로라라스(lloraras)’
12박경완SK자전거 탄 풍경 ‘너에게 난, 나에게 넌’
13박한이삼성블랙 아이드 피 ‘레츠 겟 리타디드(Let's Get Retarded)’
14마틴LG어셔 ‘예(yeah)’
15홍성흔두산영화 록키3편 주제가 ‘아이 오브 더 타이거’
16손인호롯데양혜승 ‘랑데뷰’
17전상열두산박미경 ‘핫 스터프’
18정수근롯데‘울리 불리(Wooly Bully·팝송)’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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