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10대 태극전사들/“여자팀 감독이 달라졌네”

  • 입력 2004년 6월 10일 16시 23분


태릉선수촌은 군대 같은 분위기가 있다. 하루에 정해진 훈련시간이 있고 휴식시간에 선수촌을 나가려면 대부분 감독의 허락을 받는다.

감독들은 주말에 외출을 하고 돌아온 선수들이 애인을 만났는지, 뭘 했는지 얼굴만 보면 대충 알 수 있다고 한다. 군대에 무서운 유격 조교가 있는 것처럼 선수촌에도 이름만 대면 다른 종목 선수들도 인정하는 열성 감독들이 있다.

○ ‘독사’가 순해졌다?

태릉선수촌 식당의 점심시간은 오전훈련이 끝나는 12시부터다. 그러나 여자배구 대표선수들은 12시 반 이전에 점심을 먹은 기억이 없다. ‘독사’ 김철용 감독의 오전훈련은 언제나 길어지기 때문이다. 과거 LG정유 감독을 할 때는 선수 중 누구든 훈련이 힘들다고 울면 밥을 먹다가도 다시 훈련을 시켰다.

그런 김 감독이 변했다는 소리가 들린다. 부드러워졌다는 것이다. 지난달 일본에서 벌어진 아테네올림픽 예선전에서 이탈리아에 세트스코어 ‘0-2’로 뒤지다 ‘3-2’로 역전승을 거뒀을 때 독사는 눈물을 흘렸다.

“배구생활 32년 만에 처음으로 코트에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94년 히로시마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우승했을 때도 울지 않았는데….”

김 감독은 이번 예선전을 위해 장소연(30) 강혜미 선수(30)에게 제발 대표팀에 합류해 달라고 애원을 했다. 역시 그의 배구인생 처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그렇다고 훈련의 강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자신의 지적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선수에게는 말이 아니라 공으로 가르친다. 스파이크한 공을 10번 받게 하는데 마지막 한두 개를 받기 어려운 곳에 준다. 못 받아내면 다시 10번을 받게 한다. 속칭 ‘어게인(again)’을 계속하면 선수들은 녹초가 돼 눈물을 쏟지만 나중에는 실력이 부쩍 는다.

노장선수들의 몸 상태와 이에 맞는 식이요법, 체력관리, 훈련법 등을 노트에 기록하고, 선수들이 계속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는 자상한 감독이기도 하다.

○ ‘여자이기 전에 인간’

‘남자팀 감독이 여자팀 감독 하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남자 선수들에 비해 여자 선수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러나 89년부터 12년간 남자하키 대표팀을 이끌다 2000년 말부터 여자대표팀을 맡고 있는 김상열 감독에게는 이 말이 잘 적용되지 않는다.

김 감독은 세워 놓은 목표는 어떻게든 성취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중하위권 남자팀을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은메달까지 끌어올린 것이 한 예다.

그는 선수들에게 “너희는 여자이기 전에 인간이다”고 말한다. 그러나 남자 선수들과 다른 면이 하나둘씩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훈련하는 그날그날의 분위기에 예민한 편입니다. 자신의 몸 상태나 감독의 사소한 말에도 컨디션이 많이 달라지더군요.”

감독이 누구를 편애한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것은 금물. 그래서 개별적으로 말할 것이 있어도 주장을 통한다. 문제를 지적할 때도 다른 선수들이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한다. 나이차가 많게는 9살이나 나다보니 끼리끼리 모이는 경향을 줄이는 것도 큰일이다. 가능하면 TV도 같이 보도록 유도한다.

과거 여자 하키팀은 스파르타식 지도가 주류였다. 김 감독은 남자대표팀 때부터 선수들 스스로 전술과 지식을 이해하도록 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의 실험은 이번에도 통할 것인가.

민동용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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