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5일 터키와의 2차 평가전과 9일 열린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베트남전에선 정장차림이었으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팬 보기에 좋지 않다”는 주위의 권유에 정장을 입었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해 보였다.
과도체제의 수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박성화 감독대행(49)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베트남전 2-0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9일 밤 늦은 시간. 국가대표팀 숙소인 대전 스파피아호텔에서 박 감독대행과 마주 앉았다. 모처럼 표정이 밝았다.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한 듯해 홀가분합니다. 체력이 바닥났는데도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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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9일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의 전격 사퇴 후 파라과이전(4월 28일·0-0)을 시작으로 베트남전까지 그가 벤치를 책임진 4경기의 성적표는 2승1무1패. 찬사를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비난받을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1년4개월을 수석 코치로서 보좌했던 쿠엘류 전 감독을 따라 함께 물러나지 못하고 ‘대행’ 꼬리를 단 채 어정쩡하게 대표팀을 이끌며 겪은 심적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동반 사퇴하지 않았느냐’는 질책, ‘감독직에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 그때마다 그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이 대목에 이르자 박 감독대행은 오래 전에 마음 정리를 한 듯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터키와의 1차전에서 지자 오히려 저한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하지만 전 욕심이 없었습니다. 쿠엘류 전 감독과 공동책임을 져야 할 마당에 개인적 욕심을 부릴 입장도 아니었고. 제 임무는 신임 감독이 올 때까지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협회가 아시안컵을 앞두고 본격 훈련이 시작되는 27일 이전에 신임 감독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한 만큼 내 역할은 베트남전으로 끝났다”며 “14일부터 시작되는 청소년대표팀(19세 이하) 훈련에만 매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쿠엘류 전 감독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도 “100% 의견충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화까지는 아니었다”는 것.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이에 당연히 빚어질 수 있는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박 감독대행은 “쿠엘류 전 감독이 실패한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자율을 중시하는 쿠엘류 전 감독은 누군가 앞장서 이끌어야 하는 한국 선수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기존 선수들에 의존하다보니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다는 게 그의 분석.
2002월드컵 4강신화에 도취해 2년간 내리막길을 걸으며 ‘쿠엘류호’를 난파시킨 선수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을까.
“일본도 월드컵 뒤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겪다 최근에야 안정을 찾았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만큼 선수들의 정신상태가 썩은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화려함을 맛본 선수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지도자로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박 감독대행은 모든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대전=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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