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팀]박성화 감독대행 “내 역할은 끝났다”

  • 입력 2004년 6월 10일 18시 36분


#1 : 터키와의 1차 평가전이 열린 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 그는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공식 인터뷰 자리에 나서는 감독은 정장 차림이 관례. 하지만 그는 트레이닝복을 고수했다.

#2 : 5일 터키와의 2차 평가전과 9일 열린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베트남전에선 정장차림이었으나 얼굴은 내내 굳어 있었다. “팬 보기에 좋지 않다”는 주위의 권유에 정장을 입었지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 불편해 보였다.

과도체제의 수장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박성화 감독대행(49)의 입장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장면이다.

베트남전 2-0 승리의 기쁨이 채 가시지 않은 9일 밤 늦은 시간. 국가대표팀 숙소인 대전 스파피아호텔에서 박 감독대행과 마주 앉았다. 모처럼 표정이 밝았다.

“제게 맡겨진 소임을 다한 듯해 홀가분합니다. 체력이 바닥났는데도 최선을 다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죠.”

월드컵 아시아 2차예선 베트남과의 경기를 앞둔 7일 박성화 감독대행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4월 19일 움베르토 쿠엘류 감독의 전격 사퇴 후 파라과이전(4월 28일·0-0)을 시작으로 베트남전까지 그가 벤치를 책임진 4경기의 성적표는 2승1무1패. 찬사를 받았으면 받았지 결코 비난받을 성적은 아니다.

하지만 1년4개월을 수석 코치로서 보좌했던 쿠엘류 전 감독을 따라 함께 물러나지 못하고 ‘대행’ 꼬리를 단 채 어정쩡하게 대표팀을 이끌며 겪은 심적 갈등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왜 동반 사퇴하지 않았느냐’는 질책, ‘감독직에 욕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어린 시선…. 그때마다 그의 마음은 천 갈래, 만 갈래로 찢어졌다.

이 대목에 이르자 박 감독대행은 오래 전에 마음 정리를 한 듯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터키와의 1차전에서 지자 오히려 저한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어요. 하지만 전 욕심이 없었습니다. 쿠엘류 전 감독과 공동책임을 져야 할 마당에 개인적 욕심을 부릴 입장도 아니었고. 제 임무는 신임 감독이 올 때까지 선수들의 컨디션을 최선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협회가 아시안컵을 앞두고 본격 훈련이 시작되는 27일 이전에 신임 감독문제를 매듭짓겠다고 한 만큼 내 역할은 베트남전으로 끝났다”며 “14일부터 시작되는 청소년대표팀(19세 이하) 훈련에만 매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쿠엘류 전 감독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도 “100% 의견충돌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화까지는 아니었다”는 것. 다른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이에 당연히 빚어질 수 있는 과정이었다는 얘기다.

박 감독대행은 “쿠엘류 전 감독이 실패한 원인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민감한 사안이라고 생각했는지 말투가 조심스러웠다.

자율을 중시하는 쿠엘류 전 감독은 누군가 앞장서 이끌어야 하는 한국 선수들과의 문화적 차이를 극복할 시간이 부족했고 그래서 기존 선수들에 의존하다보니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자기 색깔을 보여주는 데도 실패했다는 게 그의 분석.

2002월드컵 4강신화에 도취해 2년간 내리막길을 걸으며 ‘쿠엘류호’를 난파시킨 선수들에게 서운한 감정은 없을까.

“일본도 월드컵 뒤 우리와 비슷한 과정을 겪다 최근에야 안정을 찾았습니다. 일부에서 우려하는 만큼 선수들의 정신상태가 썩은 것은 아닙니다. 최고의 화려함을 맛본 선수들에게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지 못한 것이 지도자로서 아쉬울 따름입니다.”

박 감독대행은 모든 책임을 자신의 탓으로 돌렸다.

대전=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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