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처방사가 오른쪽 발목의 어느 한 부위를 누르자 그가 얼굴을 심하게 찡그리며 혼잣말을 했다. “온몸이 안 아픈 데가 없어요. 이게 20대 초반이 할 소리인가요.”
지난해 한국 축구선수로는 처음으로 스페인의 프리메라리가(프로축구 1부리그)에 진출한 이천수(레알 소시에다드). 지난달 30일 소리 소문 없이 입국해 서울 아산병원 스포츠건강의학센터를 오가며 매일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그를 지난 주 병원에서 만났다. 그는 지난달 17일 스페인에서 습관성 어깨 탈골 치료를 위해 오른쪽 어깨에 인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악바리’ 이천수에게 잦은 부상은 그의 승부 근성을 보여주는 일종의 ‘훈장’ 격이다. 부평고 3학년 때인 99년 다리 부상으로 깁스를 하고 있다가 경기 직전 깁스를 뜯어내고 출전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3월17일 아테네올림픽 최종 예선전인 이란과의 경기 때는 발목을 다쳤는데도 경기에 출전하겠다고 우겨 결국 한 골을 넣었다. 한국은 1-0로 이겼지만 이천수는 다친 부위가 심해져 다음 경기부터 올림픽대표팀 명단에서 빠졌다.
이처럼 남다른 승부근성은 그에게 빠른 성공을 안겼지만 부작용도 컸다. 고교 2년 때인 98년 고교연맹전에서 8골을 기록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천수는 99년 1월 청소년대표, 99년 9월 올림픽대표, 2000년 4월 국가대표로 선발됐고, 2002한일월드컵 때의 활약을 발판 삼아 지난해 유럽에 진출했다.
그러나 프리메라리가에서의 활약은 기대에 못미쳤다. 시즌 첫 경기와 마지막 경기에서 어시스트 1개씩을 기록한 것으로 시즌을 마쳐야 했다. 잦은 부상이 부진의 한 원인이었다. 스페인에서 1년을 보내면서 그는 자신을 강하게 몰아치는 것이 결코 능사가 아님을 알았다.
이제 그는 “다가온 아시안컵도 중요하고 올림픽도 중요하지만 일단 몸을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한다.
“사실 잦은 부상은 이제껏 자라온 환경 때문이기도 해요. 한국에는 재활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잖아요. 초등학교 때부터 어디가 아파도 (코칭스태프에게) 맞을까봐 말을 못했어요. 말을 해봤자 ‘우리 때는 너보다 더 심해도 다 뛰었다’라고 무시하니까 아픈 게 죄를 짓는 것 같더라구요. 하지만 유럽 선수들은 몸 컨디션이 조금만 안 좋아도 당당하게 얘기하고 2, 3일 쉬어요. 우리는 아픈 거 참고 출전했다가 나중에 크게 다쳐서 1∼2주 경기 못 뛰고 또 완전히 회복이 안 되니까 다친 데 또 다치고, 악순환이죠.”
그의 말을 듣다보니 한국에서 운동하기가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부상 때문에 꽃도 채 피워보지 못하고 중도하차하는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천수는 지난 1년 간 부쩍 성숙해진 것 같았다.
“지난해 11월부터 2월 까지가 가장 힘든 시기였어요. 말도 안 통하고, 외롭고, 경기에도 거의 못 나가고, 정말 울고 싶었어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여러 번 했지만 그때 마다 ‘결국 내가 선택한 것 아니냐’고 스스로 독려했어요.”
그래도 이천수의 트레이드마크인 ‘자신감’이 어디 가나. 그는 금세 “이제 적응은 끝났어요. 지난 시즌만큼 나쁠 수는 없을 거예요. 일단 팀과의 남은 계약기간 2년 동안 공격 포인트 30을 달성할 겁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될 자신이 있어요.” 그는 귀국을 앞두고 왼팔 안쪽에 30이라는 숫자를 문신해 넣었다.
마지막으로 2002 월드컵 4강의 주역이었던 그가 최근 제기되고 있는 ‘한국축구의 위기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거죠. 오히려 잘 된 것 같아요. 한번 뒤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봐요. 저처럼 한국축구도 금방 제 자리를 찾을 겁니다.”
인터뷰를 마친 뒤 악수를 하기 위해 잡은 그의 오른손은 생각보다 작고 가냘팠다. 약하게만 보이는 그에게서 어떻게 그런 강한 폭발력과 근성이 터져 나오는 것일까. 그를 ‘작은 거인’으로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김성규기자 kimsk@donga.com
▼이천수는 누구▼
△생년월일/출생지=1981년 7월9일/인천
△체격=1m72, 62kg
△포지션=공격수, 미드필더
△출신교 및 클럽= 부평초-부평동중-부평고-고려대(2년 중퇴)-울산 현대-레알 소시에다드
△A매치 데뷔전 및 성적=2000년 4월5일 아시안컵 예선 라오스전(통산 39경기 출전 4득점)
△가족관계=부 이준만 모 박희야의 2남 중 막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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