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대전 계룡산 자락의 한 암자. 박세리는 아버지 박준철씨(53), 어머니 김정숙씨(51)와 함께 불공을 드렸다. 불공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이어졌다.
박세리는 소문난 불자(佛子). 미국프로골프(LPGA)에서 경기를 할 때도 오른 손목에 염주를 차고 다닌다. 그가 이날 암자를 찾은 이유는 단 하나. 골프가 안 되기 때문이다. 스스로 “미치겠다”고 할 정도.
박세리는 5월 미켈롭울트라오픈 우승으로 명예의 전당에 한 자리를 예약했으나 이후 6개 대회에서 단 한 차례도 ‘톱10’에 들지 못하고 두 차례 컷오프 탈락의 수모를 당했다. 12일 끝난 캐나다여자오픈에서도 공동 31위(3언더파 285타)로 부진.
그는 이 대회가 끝나자마자 짐을 챙겨 아버지와 함께 귀국했다. 국내에 도착한 건 13일 오전 2시30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조용한 귀향’이었다.
도착 당일 대전 집에서 휴식을 취한 박세리는 이튿날 암자를 찾아 마음을 닦은 뒤 오후 늦게 연습장에서 볼을 치며 컨디션을 점검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귀국은 이례적인 일. 부상도 아니고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 박세리의 국내 매니지먼트사인 ㈜세마의 이성환 이사는 “단지 휴식을 취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며 “요즘 공도 잘 안 맞고 생각이 복잡하니까 불공도 드리고 마음의 정리를 하기 위해 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세리의 부진은 들쭉날쭉한 드라이브샷 때문. 올 시즌 드라이브샷의 페어웨이 적중률이 61.9%로 최하위권(147위)이다. 러프에서의 세컨드샷이 잦다 보니 그린을 놓치기 일쑤고 이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흔들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6월부터 새 드라이버(r7)를 쓰기 시작했는데 피팅 때는 잘 맞던 드라이버가 정작 경기에서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볼이 안 맞으니 스윙이 잘못됐나 싶어 스윙을 바꿨고 그러다 보니 샷이 망가졌다는 게 박세리측의 설명. 캐나다여자오픈 때는 드라이버 샤프트를 ‘스티프’에서 ‘레귤러’로 바꾸는 등 변화를 줬으나 아직 예전 감각이 살아나지 않는다고.
이번 주 LPGA투어 자이언트이글 클래식을 건너뛰는 박세리는 19일 출국해 프랑스 에비앙마스터스와 영국 브리티시오픈에 출전한다. 과연 불공의 효험을 볼 수 있을까.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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