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시절, 그렇게 한쪽 시력을 거의 잃었다. 그러나 라켓만큼은 결코 놓을 수 없었다.
한쪽 눈으로 셔틀콕을 쳐야 하니 처음에는 거리도 제대로 맞출 수 없었다. 그래도 계속 라켓을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각막수술도 받았지만 사물은 여전히 뿌옇게 보였다. 한쪽 눈에만 렌즈를 끼고 코트에 나서지만 체육관 조명 때문에 눈이 부실 때가 많았다. 그래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
‘비운의 2인자’ 손승모(24·밀양시청)는 2004 아테네 올림픽 배드민턴 남자단식에서 은메달을 확보할 때까지 오랜 세월 동안 이처럼 순탄치 않은 길을 걸었다.
20일 준결승 역시 마찬가지. 상대전적에서 2전 전패였던 8번 시드의 소니 드위 쿤조로(인도네시아)를 맞아 1세트 초반 2-6까지 뒤지다 짜릿한 역전승을 거둬 기선을 제압했다. 2세트를 내주며 고비를 맞았으나 끈질긴 네트플레이로 마지막 세트를 잡았다.
손승모는 “눈 때문에 다른 선수들보다 힘든 게 사실이지만 이젠 다 이겨냈다”면서 “준결승 상대를 한번도 이겨본 적이 없어 불안했는데 경기가 거듭될수록 자신감이 생겼다”고 기뻐했다.
한국은 배드민턴 강국으로 불리지만 복식과 여자단식에서 올림픽 정상에 올랐을 뿐 남자단식은 ‘금단의 땅’이었다. 중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가 워낙 강해 명함 한번 제대로 내밀 수 없었다. 하지만 손승모는 이 불모지에서 새로운 희망을 밝히며 한국 배드민턴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진주 출신으로 밀양초등학교 5학년 때 라켓을 처음 잡은 그는 밀양고 1학년 때 훈련하다 셔틀콕에 오른쪽 눈을 맞아 선수 생활에 위기를 맞았다. 어렵게 재기에 성공했지만 동갑내기 이현일(김천시청)에게 밀려 늘 ‘넘버2’ 신세였다. 승부욕과 집중력이 강한 반면 경기가 풀리지 않으면 맥없이 무너지는 약점 때문에 국내용 선수라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피눈물 나는 훈련으로 마침내 한국 배드민턴 역사를 새로 쓴 주인공이 됐다.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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