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광판에 ‘골드 메달 포인트’라는 표시가 밝게 빛났다. 이제 1점만 더 따내면 금메달. 마지막 고지를 눈앞에 둔 유승민(22·삼성생명)은 침착하게 서브를 넣었다. 상대 왕하오(21)의 리턴이 공략하기 좋은 코스로 들어왔다. 이거다 싶었다. 온몸의 힘을 모두 실었다.
3구째 강한 드라이브에 걸린 2.7g의 공이 몇t의 무게라도 실린 것처럼 왼쪽 코너에 묵직하게 박혔다. 왕하오가 황급하게 몸을 날려 라켓을 대봤지만 공은 오른쪽 테이블 바깥으로 날아갔다.
승리를 확인한 유승민은 주먹을 불끈 쥔 뒤 김택수 코치에게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하며 환호했다. ‘탁구 신동’이 45분의 숨 막히는 명승부를 마감하며 ‘탁구 황제’로 등극하는 순간이었다.
경기 후 유승민은 “많이 떨렸지만 최선을 다해 고비를 넘겼다”며 “88 서울 올림픽 이후 침체에 빠진 한국 탁구가 다시 살아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 기쁘다”고 말했다.
이날 유승민은 고전이 예상됐던 게 사실. 경기 전까지 ‘이면타법의 달인’ 왕하오와의 상대전적은 1승6패. 99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 때 한차례 꺾은 뒤 성인대회에선 올해 5월 코리아오픈 준결승 패배까지 6연패를 당했기 때문.
하지만 과거는 과거일 뿐이었다. 1세트를 2분56초 만에 11-3으로 따내며 기선을 제압한 유승민은 백핸드 스매싱이 살아난 왕하오에게 2세트를 9-11로 내줬으나 강력한 드라이브가 먹혀들면서 3, 4세트를 내리 따냈다.
유승민은 듀스 끝에 5세트를 11-13으로 내줬으나 6세트에서 9-9 동점을 이룬 뒤 과감한 드라이브 공격으로 내리 두 점을 따내 꿈만 같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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