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바르셀로나올림픽마라톤에서 우승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가 아테네에 왔다. 그리고 30일 0시 레이스를 앞두고 있는 친구 봉주에게 애정 어린 충고의 편지를 보냈다. 다음은 그 내용.
내 친구 봉주에게.
이제 네가 전설의 마라톤 평원을 누빌 일만 남았구나. 솔직히 친구로서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네가 꼭 금메달을 따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충고가 될 만한 것을 몇 자 적어본다.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은 아주 정직하다. 동등한 조건에서 인간한계를 실험하는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담고 있다. 그만큼 손에 넣기도 힘들다.
이번 레이스에 대해 '지옥의 코스'니 '무더운 날씨'니 하는 말들이 많은데 사실 이런 말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조건은 똑같다. 이는 벌써 23일 열린 여자마라톤에서 초반부터 무섭게 몰아붙인 일본의 노구치 미즈키가 우승함으로써 증명됐다. 노구치는 피니시라인을 통과한 뒤 토할 정도로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내가 볼 때 넌 이번 레이스에서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선두그룹을 따라가는 것과 2위 그룹에 처져 뛰는 것. 첫째 선택은 금메달을 노릴 수는 있지만 오버페이스를 할 경우 자칫 메달은커녕 10위권 밖으로 처질 수 있는 부담이 있다. 두 번째 선택은 상위권 진입은 가능하지만 절대 금메달을 딸 수는 없다는 약점이 있다. 선택은 네가 해야 한다. 그동안 네가 보여줬듯 모든 준비를 잘했다면 금메달은 가능할 것이다.
난 늘 '이번이 마지막이다. 죽을 각오로 뛴다'는 생각으로 마라톤에 임했다. 훈련 때도 마찬가지였다. 92바르셀로나올림픽 때는 '레이스를 마치고 곧바로 은퇴를 선언한다'고 생각할 정도로 모든 것을 걸었다. 모리시타를 따돌리기 위해 몬주익 언덕을 올라갈 때 숨이 턱까지 찼지만 죽을 각오를 했기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다. 이게 내가 고 손기정 할아버지 이후 56년 만에 올림픽 마라톤 월계관을 차지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생각한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네가 "아테네올림픽이후에도 계속 뛸 것"이란 말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놀랐다. 언뜻 보면 "역시 이봉주"란 찬사를 들을 지도 모르겠다. 벌써 31번이나 풀코스를 완주하고도 또 뛸 정도로 불굴의 의지를 지녔다는 찬사. 하지만 지금은 뒤를 돌아보면 안된다. 조금도 물러날 여지를 보이면 안된다. 오직 올림픽에 모든 걸 걸어야 한다. 넌 이제 서른넷이다. 지난달 말 강원도 횡계에서 훈련에 열중인 너를 봤을 때 '이젠 봉주도 옛날 같지 않구나'란 느낌을 받았다. 세월이 그만큼 흘렀다. 너에겐 이번이 올림픽 금메달을 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봉주야, 우리가 고등학교 시절 라이벌로 처음 만났으니 벌써 20년이 다 돼가는 구나. 난 묵묵히 성실하게 땀 흘리는 네 모습을 보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봉주야, 지금까지 흘린 땀방울이 헛되지 않게 "죽을 각오로 달려" 한국에 멋진 금메달을 선사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힘내라 봉주야.
아테네에서 친구 황영조(SBS 해설위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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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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