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구디경기장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근대5종 경기. 3경기를 치른 뒤 1위와의 격차는 232점. 2경기가 남아 있어 얼마든지 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바로 다음 경기는 자신의 주 종목인 승마.
한도령(28·대구시체육회)은 힘차게 ‘바리오’라는 이름을 가진 말에 올랐다. 페이스가 좀 빨라 보이기는 했어도 출발은 무난했다.
하지만 7A 장애물 1개를 떨어뜨린 뒤 9번 장애물(벽돌)에서 모든 희망이 깨져버렸다. 바리오가 급제동을 거는 바람에 장애물을 무너뜨렸고 한도령은 어이없이 말에서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고삐까지 놓쳐 말은 경기장 구석으로 도망쳤다. 이 장애물 하나에서 깎인 점수만 해도 128점. 장애물을 떨어뜨려 28점에다 말 이탈에 따른 60점과 낙마 40점이 합해진 것. 게다가 말을 잡으러 뛰어다니느라 2분 이상 시간을 끌어 시간 감점까지 불렀다.
어렵사리 다시 말을 탄 한도령은 간신히 경기를 마칠 수 있었지만 1200점 만점에 무려 392점이나 감점된 808점을 얻는 데 그쳐 32명의 출전 선수 가운데 순위는 9위에서 26위로 곤두박질했다. 첫 메달은 고사하고 한국 근대5종의 역대 올림픽 최고 성적인 11위를 깨뜨리는 꿈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최종 성적은 24위.
이영찬 근대5종 감독은 “말을 끝까지 믿으면 안 되는데 초반에 잘 풀리다보니 방심한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나폴레옹 시대 전쟁터에서 유래한 근대5종은 사격 펜싱 수영 승마 달리기를 잇달아 치러 승부를 겨룬다. 5개 종목 가운데 승마는 순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전쟁터에서 남의 말을 타고 싸워야 하듯 자기 말이 아닌 대회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말을 추첨으로 배정받아 이변이 많이 나오기 때문.
이날 한도령 역시 25마리의 말 가운데 하나를 제비뽑기로 골랐는데 하필 자신이 꺼리는 빠르고 억센 말이 덜컥 걸린 것. 경기 전 20분 동안 얼굴을 익혔지만 궁합이 맞지 않는 말과 만나 평소 기록보다 300점 가까이 낮은 점수를 냈다. 폴란드의 마르친 호르바치는 2위를 달리다 승마에서 말이 3차례나 장애물 비월을 거부하는 바람에 경기를 포기해 최하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메달을 기대했는데 자신 있던 승마에서 너무 많은 포인트를 잃어 안타깝습니다. 말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비인기 종목의 설움 속에서도 올림픽을 앞두고 두 달 가까이 헝가리 전지훈련까지 해가며 땀을 흘린 한도령. 그러나 야속한 말만큼은 어찌할 수 없었다. 이춘헌(국군체육부대)은 21위.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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