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선수 오성옥(일본 메이플레드)은 후배 허순영(대구시청)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울지 마”라고 했다. 그렇게 위로하는 그의 눈가도 이미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29일 헬리니코 인도어어리나에서 열린 2004 아테네 올림픽 핸드볼 여자 결승. 한국 선수들과 코칭 스태프는 덴마크와 2시간이 넘는 접전 끝에 아쉽게 패한 뒤 서로 얼싸안으며 울음을 삼켰다. 너무 아쉬웠다.
이 경기는 아테네 올림픽 최고의 명승부. 전후반을 25-25로 끝낸 뒤 1차 연장전에서 다시 29-29. 2차 연장마저 32-32. 17차례 동점이 거듭되면서 순수 경기 시간만 해도 1시간20분. 특히 2차 연장 마지막 10초를 못 버티고 동점골을 내준 게 뼈아팠다.
이제 남은 건 양 팀에서 5명씩 나와 운명을 결정짓는 승부 던지기. 오펜바흐의 천국과 지옥 서곡이 흐르는 가운데 한국은 주장 이상은(29)이 먼저 첫 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임오경(메이플레드)과 문필희(한국체대)가 던진 공이 잇따라 상대 골키퍼에게 걸린 뒤 4번째로 나선 김차연이 골을 성공시켰지만 덴마크는 4명 모두 성공해 2-4로 패배.
한국 벤치에선 “아”하는 절망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고 덴마크 선수들은 코트로 몰려나와 얼싸안았다. 덴마크는 1996년 애틀랜타, 2000년 시드니에 이어 올림픽 3연패. 한국은 애틀랜타 대회 결승에서도 연장전 끝에 덴마크에 져 은메달에 그쳤고 시드니 대회에선 준결승에서 다시 발목을 잡혀 덴마크는 한국의 천적인 셈.
그래도 너무나 값진 은메달이었다. 도미노 해체로 실업팀이 5개밖에 남아 있지 않은 상황에서 대표팀의 이상은 오영란 등 4명이 무적신세. 반면 덴마크는 핸드볼이 국기로, 클럽팀만 해도 수천 개에 이르며 프로팀은 1∼3부를 통틀어 36개나 된다.
여자핸드볼 임영철 감독은 “스포츠에 2등은 없다지만 선수들에게 고생은 가슴속에 묻어두고 즐겁게 웃자고 말했다”면서 “경기장 없는 떠돌이 신세로 감히 기적을 일궜다고 말하고 싶다”며 감격스러워 했다.
80분을 풀로 뛰며 9골을 터뜨린 이상은은 “아쉽긴 하지만 잘 싸웠다”며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은메달이다”라고 말했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대회 개막을 눈앞에 두고 임신 사실을 알게 돼 출전할 수 없었던 맏언니 임오경(33)은 “후배들이 잘해줬는데 언니로서 도움이 안 된 것 같아 미안하다”며 “딸이 너무 보고 싶어 지금이라도 당장 달려가고 싶다”고 소감을 밝혔다.
아들을 수원 시댁에 맡겨두고 올림픽에 4회 연속 출전한 오성옥은 고별 무대에서 당한 아쉬운 패배가 못내 속상한 듯 말 한마디 없이 인터뷰장을 빠져나갔다.
후회 없이 잘 싸운 한국 선수들은 시상식에서는 활짝 웃으며 밝은 모습을 보였다. 그들 모두 자랑스러운 승자였다.
한편 이상은과 우선희(26·삼척시청)는 국제핸드볼연맹(IHF)이 선정한 올스타팀 멤버로 뽑혔다.
아테네=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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