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4강의 위업을 이뤘지만 약체 팀에 유독 약해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한국축구의 현주소를 보는 것 같았다.
8일 베트남 호치민시 통낫스타디움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 7조 한국-베트남전. 한국은 국제축구연맹(FIFA) 9월 랭킹이 23위인 반면 베트남은 94위. 경기 전까지 한국은 역대 전적에서 14승6무2패로 절대 우세.
기록으로 보면 당연히 완승해야 하는 경기였지만 한국은 자책골까지 기록하는 졸전 끝에 이동국(광주) 이천수(누만시아)의 연속골로 2-1의 신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은 3승1무(승점 10)를 기록해 조 선두를 달리며 최종예선 진출에 한발 더 다가섰다.
한국은 경기 초반부터 베트남의 밀집수비에 막혀 이렇다할 골 찬스를 만들지 못하고 전반 내내 답답한 경기를 펼쳤다. 전반 볼 점유율 62 대 38, 슈팅 수 10 대 6으로 앞섰지만 실점 위기는 한국이 더 많았다.
6분 이동국이 첫 슈팅을 기록한 한국은 16분 안정환, 19분 이동국, 22분 안정환이 번갈아가며 슈팅을 날렸으나 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베트남의 기습에 고전해 33분 베트남 트란트루몽지앙의 강력한 슈팅을 GK 이운재가 간신히 쳐냈고 34분에도 결정적 실점 위기를 넘겼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반 42분엔 차두리(프랑크푸르트)가 볼을 다투던 중 베트남 선수를 팔꿈치로 때렸다가 퇴장당해 10명이 싸우는 수적 열세에 몰렸다.
한국은 후반 4분 베트남의 역습에 당황한 수비수 박재홍(전북)이 헤딩으로 걷어낸다는 게 자책골이 되면서 선제골을 빼앗겼다.
한국축구의 기사회생은 이천수의 발에서 시작됐다. 후반 18분 베트남 오른쪽 진영을 파고든 이천수가 올려준 센터링을 골문 정면에서 이동국이 머리로 받아 넣어 동점골을 터뜨린 것.
이어 후반 31분 베트남 페널티지역 왼쪽 외곽에서 얻은 프리킥을 이천수가 절묘한 오른발 킥으로 역전 결승골을 엮어냈다.
한국은 다음 달 13일 레바논과 원정경기를 치르며 11월 17일 몰디브와 홈경기를 갖는다. 32개 팀이 8개조로 나뉘어 진행되고 있는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예선의 각 조 1위팀은 내년 최종예선에 진출해 풀리그로 4.5장의 본선 진출권을 다투게 된다.
권순일기자 stt77@donga.com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 양 감독의 말
▽요하네스 본프레레 한국 감독=상당히 어려운 경기를 했다. 원인은 스스로 곤경에 처하는 플레이를 했고 느린 속도의 플레이를 했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열심히 하지 않아도 상대보다 낫다는 자만심을 가졌던 것 같다. 약팀을 만나면 어려운 경기를 할 수도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전반은 아주 어려웠다. 선수들은 결코 쉬운 경기는 없다는 것을 배워야 한다. 레바논전에 대비해 오늘 경기 비디오를 10번 정도 보고 분석해서 대비하겠다. 아무리 주전이라도 레바논전에서 열심히 뛰지 않으면 바로 교체하겠다.
▽에드손 타바레스 베트남 감독=늘 잘해 오다가 한두개의 실수로 무너진다. 더 많은 훈련과 집중이 필요하다. 전반에 3번의 완벽한 기회가 있었는데 놓쳤다. 전반에 우리가 2-0 정도로는 앞설 수 있었다. 우리 팀은 계속 발전하고 있지만 이것이 한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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