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테니스]러 쿠즈네초바 ‘사이클 낙오자’서 라켓女王으로

  • 입력 2004년 9월 12일 18시 46분


아버지는 사이클 코치로 어머니를 포함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챔피언을 5명이나 길러냈다. 어머니는 6차례 세계 사이클 챔피언에 오르며 20차례나 세계신기록을 갈아치웠다. 오빠는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사이클 은메달리스트 출신.

그러나 그는 처음 출전한 사이클 대회에서 꼴찌를 했고 2번째 대회에서는 기권했다.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싶지 않았다. 아버지도 대신 테니스 라켓을 집어 줬다. 그리고 그 딸은 사이클 아닌 테니스 여왕에 올랐다.

세계 최강 러시아 여자 테니스의 새로운 별 스베틀라나 쿠즈네초바(19·사진). 세계랭킹 9위 쿠즈네초바는 12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US오픈 여자 단식 결승에서 부상으로 서브의 위력이 뚝 떨어진 같은 러시아의 6번 시드 엘레나 데멘티예바(23)를 1시간15분 만에 2-0(6-3, 7-5)으로 눌렀다.

그랜드슬램 대회 10번째 도전 끝에 감격스러운 첫 우승. 우승상금은 자신의 통산상금(149만2967달러)에 맞먹는 100만달러.

이날 쿠즈네초바는 35개의 실수를 했지만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앞세우고 34개의 위닝샷을 날려 7개에 그친 데멘티예바를 압도했다.

결승전이 열린 날은 현지시간으로 9·11테러가 일어난 지 꼭 3주년이 되는 날. 경기 전 당시 희생된 소방관과 경찰관을 기리기 위해 ‘FDNY’ ‘NYPD’라고 적힌 모자를 쓴 쿠즈네초바와 데멘티예바는 자신의 조국 러시아에서 최근 발생한 인질극 희생자를 추모하는 뜻으로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출전했다. 쿠즈네초바는 “오늘 승리를 두 비극에서 희생당한 분들에게 바친다”며 “우리 모두 하나로 뭉쳐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5세 때 스페인으로 테니스 유학을 떠난 쿠즈네초바는 17세인 2002년부터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미국)와 복식 파트너로 호흡을 맞추며 기량이 부쩍 늘었다.

쿠즈네초바의 우승으로 올해 4개 그랜드슬램대회 챔피언 가운데 3명이 러시아 출신으로 채워졌다. 프랑스오픈에선 아나스타샤 미스키나가, 윔블던에서는 마리아 샤라포바가 정상에 올랐다. 한 국가에서 우승컵 3개를 휩쓴 것은 1979년 미국 이후 처음.

남자 단식에서는 올해 호주오픈과 윔블던에서 우승한 세계 1위 로저 페더러(스위스)와 전 세계 1위 레이튼 휴잇(호주)이 13일 결승에서 맞붙는다. 휴잇은 준결승에서 여동생 재슬린의 남자친구 요아킴 요한손(스웨덴)을 3-0으로 가볍게 제쳤다.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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