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커룸]한방만 터졌어도…

  • 입력 2004년 10월 26일 01시 22분


이제 용의 눈에 마지막 점을 찍을 차례.

하지만 삼성 투수 배영수(23)는 그 점을 찍지 못했다. 하늘이 도와야 만들어지는 용의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사상 가장 완벽한 투구. 그러나 그는 승리도 따내지 못했고 노히트노런의 대기록도 이루지 못했다. 다만 ‘10이닝 동안 무안타 무실점한 투수’로만 기록됐다.

이게 바로 투수의 한계. 아무리 잘 던져도 타자들이 득점하지 못하면 이길 수 없다.

25일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선발 배영수는 최고 150km의 강속구와 130km대의 슬라이더, 여기에 완벽한 제구력으로 현대 타선을 압도했다.

8회 2사까지 단 한명의 주자도 내보내지 않는 완벽한 피칭. 현대 6번 박진만에게 풀카운트 끝에 볼넷을 내주고서야 배영수는 하늘을 쳐다보며 긴 탄식을 내뱉었다. 퍼펙트 경기를 놓쳤다는 의미.

하지만 배영수는 이후에도 씩씩하게 던졌다. 9회와 10회에도 삼자 범퇴로 상대를 처리했다. 10이닝 무안타 1볼넷 무실점. 투구수는 116개였고 31타자를 맞아 땅볼아웃 9개, 플라이아웃 10개, 탈삼진 11개, 볼넷 1개로 처리했다.

연장 10회를 마친 뒤 그는 더그아웃으로 들어가며 “배영수! 배영수!”를 연호하는 관중에게 더 큰 호응을 보내달라고 두 손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메이저리그에선 1959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의 하비 해딕스가 12이닝 퍼펙트를 했으나 0-0인 연장 13회 결승 2점홈런을 맞은 적이 있고 페드로 마르티네스(보스턴 레드삭스)는 1995년 몬트리올 엑스포스 시절 9이닝 퍼펙트를 했으나 0-0으로 승부가 연장전으로 가는 바람에 연장 10회 2루타를 허용했었다. 모두 타자의 도움을 받지 못한 ‘억세게 운이 없는 투수’들이었다.

퍼펙트 경기나 노히트노런이 성립되기 위해선 완투를 해야 한다. 배영수는 이날 0-0인 상태로 연장 12회까지 안타 없이 완투했다면 비록 노히트노런 승은 거두지 못해도 노히트노런의 기록은 인정될 뻔했다.

이날 주심으로 나선 최규순 심판은 “내가 여태껏 본 배영수의 공 중 오늘이 가장 좋았다. 직구의 위력이 대단했고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도 기가 막히게 떨어졌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구=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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