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종합]패럴림픽 휠체어육상 2관왕 홍석만

  • 입력 2004년 12월 30일 17시 51분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휠체어 육상 2관왕(100, 200m) 홍석만 씨. 그에게 휠체어 바퀴는 편견과 고난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바퀴’였다. 내년 장애인 대상 특수 체육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그는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희망의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권주훈 기자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휠체어 육상 2관왕(100, 200m) 홍석만 씨. 그에게 휠체어 바퀴는 편견과 고난을 뚫고 나가는 ‘희망의 바퀴’였다. 내년 장애인 대상 특수 체육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을 떠나는 그는 “4년 뒤 베이징 올림픽에서 다시 희망의 레이스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권주훈 기자
이제 갑신(甲申)년도 하루밖에 남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 그만큼 기뻤고 보람이 가득했던 한 해였다.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휠체어 육상 100m, 200m 금메달과 400m 은메달을 따낸 홍석만 씨(29).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한국 최초로 육상 종목 정상에 올랐고 200m에선 세계신기록(26초 31)까지 세웠다.

“정말 많은 걸 가져다 준 지난 1년이었고 새로운 기회를 찾은 인생의 전환점이었어요.”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낸 홍 씨의 얼굴은 밝았다. 환한 미소에선 어떤 그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양복이 잘 어울려요”라고 했더니 “2002 부산 장애인 아시아경기 때 한국 선수단 단복인데 디자인이 수수해 평상복으로 입기에 그만”이라며 웃었다.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400m에서 역주하고 있는 홍석만 씨. 그는 이 종목에서 0.001초 차로 아깝게 금메달을 놓쳤다.

이런 여유를 찾을 때까지 그의 인생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제주에서 3형제 중 귀염둥이 막내로 태어났지만 세살 때 소아마비에 걸려 걸을 수 없었다. 그런 그를 부모님은 등에 업어 학교에 보냈다.

중학교에 들어간 뒤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휠체어 육상을 시작했다. “달리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너무 속상했어요. 스피드를 느낄 수 있다면 어떤 모험이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 국가대표에서 탈락되면서 2년 동안 휠체어 육상을 떠났다. 돌이켜보면 가장 어려웠던 시기. 슬럼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역시 운동뿐이었다. 코치도 없이 퇴근 후 밤마다 2시간 가까이 운동장을 150바퀴도 넘게 돌았다. 1000만 원 가까이 하는 경기용 휠체어 값도 허리를 휘게 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목에 건 아테네 올림픽 금메달. 그는 너무 기뻐서 금메달을 깨물어보기까지 했단다.

아테네에서 금의환향한 후 3개월 동안 홍 씨는 정신없이 바빴다. 신문 인터뷰와 방송 출연 제의가 쏟아졌고 CF 출연까지 했다. 올림픽 금메달로 80만 원 정도의 연금을 받을 수 있어 경제적인 어려움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올림픽 기간 동안만 반짝하다 끝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오래 가더라고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보람이 컸어요.”

홍 씨는 내년 봄 미국 유학을 떠날 계획. 장애인 대상의 특수 체육을 공부하고 싶어서다. 6년 전 만나 사귀고 있는 일본인 여자친구와는 장래를 약속하고 싶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준비도 해야 한다.

홍 씨는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www.shadowface.com) 초기 화면에 ‘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하고 내 꿈을 꾸게 할 수 있는 휠체어 레이스를 사랑한다’라고 썼다.

그가 돌린 휠체어 바퀴는 편견과 고난으로 가득한 세상을 뚫고나갈 희망의 바퀴였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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