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코스는 한라산 등반코스 중에서도 가장 힘든 관음사 입구∼구린굴∼탐라계곡∼개미등 능선∼용진각∼장구목(1813m) 코스. 관음사 입구를 출발해 대피소가 있는 용진각(1507m)까지 썰매를 끈 이날 때마침 내린 폭설로 정상 근처엔 2m 이상의 눈이 쌓였다.
썰매는 북극에서 리드(얼음 사이로 갈라져 드러난 바다)를 건널 때 보트로도 사용하는 필수품. 지나가던 등산객들은 “배가 산을 오른다”며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남극과 북극 원정 경험이 있는 홍성택(39) 오희준 대원(35)의 썰매는 사람 한 명 지나가기도 비좁은 등산로를 잘도 빠져나갔다.
깎아지른 절벽 사이의 개미등 능선에선 썰매를 들어서 옮기느라 5명의 대원이 녹초가 됐다. 게다가 칼바람까지 불어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을 정도. “지금 영하 5도밖에 안 돼. 영하 40도의 북극에서도 이럴래? 북극에서 난빙(얼음산)을 만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박 대장의 고함은 그칠 줄을 몰랐다.
용진각에 도착하니 밤 9시 30분. 오전 11시 30분 관음사 입구를 출발한 지 꼬박 10시간 만이다.
6일 새벽엔 장구목까지 이어지는 수백m 설벽 공략에 나섰다. 장구목은 한라산에서 유일하게 눈사태가 발생하는 곳. 이미 여러 산악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허리춤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고 번갈아 선두에 나서 러셀(눈길내기)을 하며 장구목에 오르자 박 대장은 곧바로 하산을 명령했다. 오후에 다시 한번 올라야 한다는 게 이유. 대원들의 눈에 절망감이 스쳤다.
오후에 다시 썰매를 끌고 장구목 설벽을 오른 대원들은 설동을 판 후 비박을 준비했다. 설동은 눈을 파 굴을 만들어 바람을 피하는 임시 거처. 대원들은 설동 안에서 헤드랜턴으로 지도를 살펴보고 장비 점검을 하는 등 쉴 틈이 없었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할 겁니다. 2003년 북극점 도전 때 3년을 준비했지만 실패했어요. 더욱 훈련에 정성을 쏟아야 합니다.”
한라산 훈련은 설 연휴인 8일까지 이어졌다. 원정대는 15일 발대식을 갖고 24일 현지로 출발한다. 박 대장이 북극점을 밟으면 세계에서 처음으로 산악 그랜드슬램(히말라야 8000m급 14좌 완등+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지구 3극점 도달)의 주인공이 된다. 이제 그날이 멀지 않았다.
제주=전 창 기자 jeon@donga.com
▼“힘든가… 북극은 수백배 더 힘들다”
“북극이 남극보다 바람과 추위는 덜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더 가혹합니다.”
1985년부터 20년 동안 험산 오지를 누빈 박영석. 그는 2003년 한 차례 도전했다 실패한 북극을 가장 어려운 정복 대상으로 꼽았다.
남극대륙 내륙지방의 연평균 기온은 영하 55도. 반면 바다인 북극은 겨울철엔 평균 영하 40도 안팎이고 한여름엔 0도 가까이 올라간다. 남극은 대륙의 98% 이상이 얼음으로 덮여있어 태양열을 대부분 반사해 버리지만 북극은 바닷물이 열을 흡수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다.
그러나 탐험하기는 북극이 더 어렵다. 남극에는 없는 리드(얼음이 갈라져 바닷물이 드러난 곳)와 해빙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며 부딪혀 생기는 난빙대(험한 얼음산 지대)가 전진을 가로막기 때문. 실제로 박 대장은 2003년 북극점 원정 당시 넓이가 수백m나 되는 대형 리드를 만나 닷새를 허비하는 바람에 일정이 지연돼 북극점을 밟는 데 실패했다.
북극이 탐험 시기엔 오히려 더 추울 수도 있다. 남극은 대륙이라 백야인 여름철 탐험이 가능하지만 북극은 여름철엔 해빙이 녹기 때문에 태양을 거의 볼 수 없는 늦겨울부터 봄까지만 탐험할 수 있기 때문.
몸길이 2∼3m, 체중 150kg이 넘는 북극곰의 위협도 존재한다. 원정대는 이번 원정길에 장총을 휴대할 예정이다.
전 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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