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복서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 박사 학위를 받은 김재훈씨(46)는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이었다. 그는 22일 동덕여대에서 ‘생활체육과 연계한 학교체육시설의 경영활성화 방안’이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김 씨가 복싱을 시작한 것은 중학교 졸업을 앞두었을 무렵. 부친의 사업이 망해 가세가 기울자 “챔피언이 돼 돈을 벌겠다”며 글러브를 낀 것. 그의 독기를 보여주는 일화 한 가지. 아마복싱 특기생으로 부산 동아대에 입학한 그는 서울부터 부산까지 뛰었다. 세계챔피언이 될 체력과 정신력이 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완주에는 11박12일이 걸렸다.
67전55승(46KO 및 RSC)12패의 아마복싱 성적을 남긴 그는 80년 8월 프로에 데뷔했다.선수생활을 하면서도 85년 건국대 대학원에서 ‘복싱기본기술 중 잽에 관한 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당시 황충재 황준석(이상 전 동양챔피언) 등 강타자들이 즐비한 웰터급에서 한국랭킹 2위까지 올랐던 유망주. 그러나 두 선수의 벽을 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 책 외판원, 공사장 막일로 생계를 이었던 2년여를 그는 “피눈물이 났던 시기”라고 표현한다. 그러다가 87년 서울 대진고 체육교사로 임용되면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챔피언의 꿈은 물거품이 됐고, 가슴속 열정은 식을 줄 모르고…. 그래서 새로운 목표가 필요했고 박사학위에 도전하기로 했습니다.”
직장과 배움을 병행하느라 대학원 수업도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적도 있었다. 현역 복싱심판이기도 한 그의 새 목표는 프로복싱 선수들의 체중조절, 훈련법, 펀치기술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
“제 꿈은 결국 복싱으로 귀결됩니다. 못 이룬 챔피언의 꿈을 학문에서 이루고 싶습니다. 배고프고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복싱을 한다는 인식을 털어내고 프로복싱 발전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보고 싶습니다.”
글러브는 벗었지만 그의 마음은 여전히 사각의 링에 머물러 있었다.
이원홍 기자 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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