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기자는 이들의 은신처를 파악해 설악산에서 동해안 끝 마을인 강원 고성까지 심야 추격전을 벌였다. 이제야 밝히지만 당시 연락이 닿았던 이는 SK 조경환이었다.
그때 선수단 버스 창 너머로 머리 하나는 더 올라와 있어 한눈에 들어왔던 선수가 바로 홍익대 거포 문희성이었다. 195cm에 110kg의 거한. 큰 체격과 달마대사를 닮은 우락부락한 인상에 걸맞게 그의 배팅 파워는 일품이었다.
그러나 문희성은 주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년을 실업팀에서 묵은 뒤 1997년에야 지명 팀인 두산에 합류한 게 치명타가 됐다. 변화구만 들어오면 연방 방망이가 허공을 가르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공갈포’라고 놀려댔다.
올해로 어느덧 프로 9년째, 실업 시절까지 포함하면 11년째. 스타 출신일수록 프로에서 빛을 보지 못할 경우 단명에 끝나는 게 상례.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문희성의 사전에 포기란 단어는 없었다. 2군 리그에선 해마다 트리플 크라운 급의 성적을 냈지만 자신의 포지션인 1루나 지명타자엔 우즈와 강혁이 버티고 있었고 좀 할 만하면 군 입대를 하든가 어깨수술을 받아야 하는 불운이 겹쳤어도 그는 꿈을 접지 않았다.
그 정성에 하늘이 감동한 것일까. 지난겨울 고육지책으로 외야수로 전향한 문희성은 주전을 꿰차자마자 물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고 있다. 시범경기 타율 0.294에 1홈런 4타점으로 팀 내 최고 성적.
“올해 연봉이 20세 신인이랑 별 차이 없는 4700만 원입니다. 저희 동기들은 벌써 자유계약선수가 돼 몇 십억씩 벌었죠. 그래도 후회는 없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시작이니까요.”
두 아이의 아빠로서 30대 중반의 중고 신인을 자처하는 문희성. 잠실구장에서 오래간만에 만난 그의 미소가 기자의 마음속까지 환하게 비춘 하루였다.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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