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반 45분 ‘축구천재’ 박주영(20·FC 서울)의 발끝을 떠난 공이 우즈베키스탄의 골네트를 흔들자 서울 광화문 네거리는 떠나갈 듯한 함성이 울려 퍼졌다.
광화문에 모인 응원단은 패색이 짙던 경기 막판 박주영이 동점골을 터뜨리자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후반 18분 막심 샤츠키흐에게 선제골을 내준 한국 선수들은 우즈베크를 계속해서 밀어붙였다.
그러나 골은 좀처럼 터지지 않았다. 번번히 우즈베크의 수비에 막히던 공격은 후반에 교체해 들어간 정경호의 발끝에서 물꼬가 터졌다.
상대의 왼쪽 골 라인을 파고들던 정경호가 문전에서 회심의 슛을 때렸고, 상대 수비를 맞고 흘러나온 공을 잡은 김두현이 재차 슛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골키퍼의 손을 스친 뒤 아쉽게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고 이 공이 정경호의 발에 걸렸다.
정경호는 지체 없이 뛰어 들어오던 박주영에게 공을 연결했고 박주영은 정확한 땅볼 슛으로 침몰하는 본프레레호를 위기에서 구해냈다.
순간 광화문은 함성의 도가니에 빠졌고 감격한 응원단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좀처럼 자리를 뜨지 못한 채 ‘대~한민국!’ 을 외쳤다.
김선봉(28·서울 도봉구) 씨는 “너무나 극적인 승부였다”며 “이겼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적지에서 잘싸웠다. 태극전사들에게 수고했다는 말을 해주고 싶고 다음 경기에는 꼭 이겨달라고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3일 밤 10시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붉은 악마와 시민 2만 여명이 모여 “가자 독일로!”를 외치며 우즈베크전에 나선 한국선수들을 응원했다.
3년 전 입었던 붉은 티셔츠를 다시 꺼내 입은 응원단은 동아닷컴 옥외 대형 전광판 아래 모여 태극전사들이 볼을 잡을 때마다 환호를 질렀다.
선수들이 볼을 잡으면 “박지성! 이영표! 박주영!” 이름을 연호했고 상대편이 볼을 잡으면 북을 두드리며 “필승 코리아!”를 외쳤다.
이날 오후 6시께부터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응원단은 태극기와 북, 빨간 스카프, 호루라기 등 다양한 도구를 이용해 열띤 응원전을 펼쳤다.
친구들과 함께 응원나온 이정애(30·서울 마포구) 씨는 “회사 일이 끝나자마자 저녁을 먹고 나왔다”며 “3년 전에는 4강까지 올랐으니 이번에는 결승에 올랐으면 좋겠다”고 기원했다.
박동애 씨도 “아들과 함께 응원을 나왔다”며 “오늘 꼭 이겨서 국민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3년 전 오늘(2002년 6월4일)은 한국이 폴란드를 상대로 꿈에 그리던 월드컵 본선 첫 승을 거둔 역사적인 날.
경찰은 이날 광화문 일대에 45개 중대 4600여명의 병력을 배치해 광화문 일대의 교통통제와 축구팬의 안전을 지켰다.
○…2만 여명의 응원단은 후반 45분 박주영이 동점골을 넣자 일제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대~한민국!’ 을 연호했다.
이후에도 붉은 악마들은 경기 종료까지 “한골 더…”를 외치며 역전승을 기원하기도. 혜화동에서 왔다는 김동현(32) 씨는 “역시 박주영은 축구 천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에는 소형트럭 지붕에 대형 축구공을 단 이색 응원 차량이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응원 차량을 직접 제작했다는 임영국(33) 씨는 경기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남아 응원단의 ‘대~한민국!’ 구호에 맞춰 크랙션을 울려댔다.
응원을 총괄한 붉은 악마의 김정연 행정간사는 “응원단이 2만명 정도 온 것 같다”며 “질서있는 길거리 응원이 돼 기쁘다”고 말했다.
경기가 끝난 뒤 많은 응원단은 “청소! 청소!”를 외치며 주변을 정리해 성숙한 응원문화를 선보였다.
박주영, 극적인 동점골
‘축구천재’ 박주영이 위기의 본프레레호를 구했다.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한국축구대표팀은 3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파크타코르 경기장에서 열린 2006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A조 우즈베키스탄과의 경기에서 후반 18분 막심 샤츠키흐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패색이 짙었으나 후반 45분 박주영의 극적인 동점골로 1대1 무승부를 기록했다.
이로써 한국은 A조 중간전적 2승 1무 1패 승점 7을 기록하며 독일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순항을 계속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역대전적은 3승 1무 1패, 본프레레호 출범 후 성적은 9승 6무 4패가 됐다.
섭씨 30도가 넘는 폭염 탓인지 한국은 경기 내내 시원한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전반 4분 상대의 코너킥 때 문전에서 위협적인 헤딩슛을 허용하는 등 우즈벡의 기습에 시종 고전을 면치 못했다.
한국은 전반 24분 유상철의 중거리슛으로 상대 문전을 위협해 나갔다. 호시탐탐 우즈베키스탄 골문을 노린 한국은 전반 41분 상대 문전에서 패스를 주고 받다 차두리가 상대 왼쪽 골문을 보고 오른발 슛한 공이 골대를 살짝 비켜나가 아쉬움을 남겼다.
후반에 들어서도 한국의 플레이는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후반 3분 안정환은 반칙을 유도하는 플레이(헐리우드 액션)로 주심에게 경고를 받기도 했다.
한국은 후반 5분 아찔한 실점위기를 맞기도 했다. 상대의 절묘한 프리킥이 우리 골문 오른쪽으로 빨려들어가는 듯 했으나 이운재가 몸을 날려 가까스로 볼을 쳐낸 것.
한국의 선제골 허용은 순간의 방심에서 비롯됐다. 샤츠키흐가 중앙부근에서 수비수 박동혁을 제치고 문전으로 쇄도했고 골키퍼 이운재 키를 넘기는 절묘한 로빙 슛을 시도, 오른쪽 골네트를 갈랐다.
이후 한국은 파상공세에 나섰으나 무더위 탓으로 체력이 떨어진 듯 몸놀림이 둔했다. 패배가 눈앞에 다가온 후반 종료직전 침몰해가는 본프레레호를 구한 것은 국가대표 새내기 ‘황금발’ 박주영이었다.
김두현의 슈팅이 오른쪽 골대를 맞고 나오자 골대 왼쪽에서 볼을 잡은 정경호가 문전으로 패스한 볼을 박주영이 침착하게 오른발 슛, 골망을 흔든 것. 자신의 A매치(국가대표팀간 경기) 첫 경기에서 골을 뽑아낸 박주영의 천재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순간이었다.
한국은 이후 다잡은 승리를 눈앞에서 놓친 우즈베키스탄의 막판 공세를 뿌리치고 경기를 마쳐 귀중한 승점 1을 챙겼다.
한편 또다른 A조 경기에서는 사우디 아라비아가 쿠웨이트를 3-0으로 완파하고 승점 8을 기록하며 조 선두로 치고 나갔다. B조의 일본은 바레인에, 이란은 북한에 각각 1-0 승리를 거뒀다.
조창현 동아닷컴 기자 cch@donga.com
고영준 스포츠동아 기자 hotbase@donga.com
정진구 스포츠동아 기자 jingooj@donga.com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 A조 중간순위
순위 | 국 가 | 승 | 패 | 무 | 득-실 | 승점 |
1 | 사우디 아라비아 | 2 | 0 | 2 | 6-1 | 8 |
2 | 대한민국 | 2 | 1 | 1 | 5-4 | 7 |
3 | 쿠웨이트 | 1 | 2 | 1 | 2-5 | 4 |
4 | 우즈베키스탄 | 0 | 2 | 2 | 4-6 |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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