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은 최악이었다. 섭씨 28도에 습도 60%로 끈적끈적한 날씨만큼이나 답답하기만 했다.
머리에 물을 적시고 등판한 박찬호는 철저하게 직구만 노리고 들어오는 상대 타선에 시작부터 애를 먹었다. 1회말 선두타자 앙헬 베로아와 데이비드 디지저스에게 잇달아 초구 오른쪽 안타를 맞고 1, 3루를 허용한 것. 마이크 스위니를 유격수 앞 병살타로 잡아 1실점으로 한숨 돌리는 듯했지만 맷 스테어스에게 적시타를 맞아 0-2.
2회말에도 선두 알베르토 카스티요와 루벤 고타이에게 연속 안타를 내줘 2, 3루에 몰린 박찬호는 베로아의 2루 땅볼 때 1점을 더 주고 이어진 1사 3루에서 디지저스에게 오른쪽 안타를 내줘 0-4까지 뒤졌다. 2회까지만 안타 8개를 두들겨 맞아 ‘아홉수 징크스’에 묶여 100승은 물 건너 간 듯했다.
‘PARK 100’, ‘100 파이팅’이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든 관중석 교포 응원단의 표정도 굳어져만 갔다.
공주고 14년 후배인 박찬호를 응원하려고 오전 3시부터 TV를 통해 관전했던 두산 김경문 감독이 아쉬워하며 이날 낮 경기를 위해 잠을 청했던 것도 바로 이때였다.
그러나 이 위기에서 텍사스 타자들은 마치 박찬호를 위한 단합대회라도 하는 듯했다. 전날까지 시즌 첫 3연패에 빠지며 부진했던 텍사스 타선은 3회초 로드 바라하스의 솔로 홈런으로 추격의 불씨를 댕기더니 마크 테이셰이라와 행크 블랠록의 연속 2루타로 2-4까지 쫓아갔다. 이어 ‘찬호 도우미’ 알폰소 소리아노의 2점 홈런까지 터지며 4-4 동점.
승부가 원점으로 돌아가자 박찬호는 3회부터 안정을 되찾았다. 3회 1사후 테렌스 롱과 마크 티헨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더니 4회에도 카스티요와 고타이를 삼진으로 솎아낸 것. 시즌 첫 4타자 연속 삼진.
텍사스는 4회 마이클 영의 적시타로 5-4 역전에 성공한 뒤 5회에만 6안타를 집중시키며 11-4까지 달아나 박찬호의 어깨를 가볍게 했다.
박찬호는 5회 2사후 볼넷에 이은 연속 3안타로 2실점해 11-6까지 쫓겼으나 2사 1, 2루에서 카스티요를 2루수 직선 타구로 잡아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춘 뒤 6회말 론 메헤이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박찬호와 동료들이 일궈낸 값진 100승이었다.
김종석 기자 kjs0123@donga.com
▼박찬호 “고통과 기쁨 함께 나눈 팬들에 감사”▼
“나 혼자 해낸 100승이 아니다.”
박찬호는 경기 후 “성원을 아끼지 않은 고국의 팬들께 감사드린다. 주위의 많은 분이 고통과 기쁨을 함께해 줘 감사하다. 남은 시즌 더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통산 100승을 이뤘는데….
“100승은 내게는 물론이고 팬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00승보다 팀의 연패를 끊어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였다. 100승은 언젠가는 이룰 기록이지만 3연패를 당한 우리 팀에 1승이 절실하다.”
―경기 초반 긴소매 셔츠를 입다가 나중에 반소매로 갈아입었는데….
“어제 비가 와서 그런지 매우 습했다. 불펜 피칭을 하는 동안 땀이 많이 났고 덥다는 느낌이 들어 반소매로 갈아입었다.”
―5회 투아웃을 잡고 흔들렸는데….
“투아웃 이후 볼넷을 내주며 연속 안타를 맞았지만 5회를 끝낼 수 있다는 자신감은 있었다.”
―지난 3년간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
“야구 선수에게는 야구 못하는 게 가장 힘들다. 시즌 두 달이 지난 지금 건강하다는 사실에 행복하고 감사하다. 몸이 좋으니 여유와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다.”
김성규 기자 kims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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