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 속의 오늘]1998년 박세리 US 오픈 우승

  • 입력 2005년 7월 7일 00시 04분


그녀의 발은 예뻤다. 새까맣게 그을린 종아리와는 대조적으로 눈부시게 빛나던 하얀 그 발. 아마도 골프 선수의 맨발을 TV를 통해 보는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일 것이다.

1998년 7월 7일 이른 아침. 경제위기에 시달리고 있던 한국 국민은 박세리의 발을 통해 희망을 봤다.

위스콘신 주 쾰러의 블랙울프런 골프장(파71)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메이저대회 US오픈.

전날 4라운드까지 6오버파로 듀크대 재학생 추아시리폰과 동타. 18홀 연장 라운드에서도 승부는 쉽게 나지 않았다. 초반 출발이 안 좋았던 박세리는 끈질긴 추격전 끝에 한 타차 역전에 성공했지만 15번 홀(파4)에서 투 온 스리 퍼팅을 범해 다시 동타가 됐고 18번홀(파4)에서 티샷한 공은 왼쪽으로 감기면서 연못 바로 옆 경사면 러프에 걸려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았다.

오른손잡이인 박세리로선 도저히 정상적인 스탠스를 잡을 수 없는 상황. 보통의 경우라면 1벌타를 감수하고 언플레이어블을 선언해야 옳았다. 하지만 박세리는 양말을 벗어던지고 연못으로 들어갔고 거기서 친 샷은 안전하게 페어웨이에 안착했다. 스리 온 투 퍼팅으로 추아시리폰과 함께 보기.

결국 연장 라운드도 비긴 둘은 서든데스에 들어갔고 첫 홀도 승부를 가리지 못해 92번째로 맞은 11번 홀(파4, 372야드). 티샷은 추아시리폰이 페어웨이 정중앙 131야드 지점에 떨어뜨렸고 박세리는 이보다 3야드 앞선 128야드 지점에 안착. 세컨드 샷은 추아시리폰이 핀과 6m 떨어진 내리막 지점, 박세리는 한결 쉬운 5.5m 오르막 지점에 올렸다.

하지만 둘 다 한번에 넣기는 어려운 거리. 먼저 추아시리폰이 퍼팅한 공은 홀 왼쪽으로 비켜나면서 60cm를 지나쳤다. 이어 박세리 차례. 다소 세게 친 것 같은 공은 거짓말처럼 홀 컵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골프 신데렐라가 하루아침에 세계의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순간이었다. 외신들은 눈물을 펑펑 쏟아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은 박세리를 향해 “이제 그의 방에는 우승 트로피를 쌓아둘 선반이 필요할 것”이라고 일제히 타전했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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