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는 시즌 직전 ‘공공의 적’ 삼성을 견제할 유일한 후보란 평가를 받았다. LG 이순철 감독은 소수의견이긴 했지만 기아가 우승후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연 기아의 성적표는 예상과는 정반대였다. 한 번의 오르막조차 없는 끝 모를 꼴찌 행진. 더욱 심각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부진의 원인을 찾기 힘들다는 점. 에이스 김진우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한때 이탈했지만 그 정도는 어느 팀에나 있는 불운이었다.
이에 팀 내에선 전력 외적인 마이너스 요인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음모설이 모락모락 일기 시작했다. 감독의 자질 시비가 위에서부터 내려온 것이라면, 프런트의 입김이 너무 세고, 특정 대학 출신들이 선수단을 좌지우지하며, 차기 감독이 이미 내정됐다든지 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다.
사실 이쯤 되면 팀이 망가지는 것은 그야말로 한 순간이다. 음모의 진위 따위는 이젠 상관이 없다. 25일 유남호 감독이 물러나고 서정환 감독대행 체제로 바뀐 게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7월 김성한 감독이 중도 해임되고 유남호 대행이 지휘봉을 잡을 때도 바로 이랬다.
하지만 사령탑 하나 바꾼다고 만신창이가 된 팀이 새로워질까. 게다가 해임된 감독이 다른 이들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 제단에 바쳐진 희생양이라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기아의 전신인 해태는 김응룡 감독이 항상 잘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18년간 우직하리만큼 변함없는 지지를 보냈다. 선수단의 중심은 프런트가 아닌 감독이고, 성적이 최우선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2000년 겨울 창단한 기아는 해태의 후계자임을 자처하며 타이거즈란 명칭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하루빨리 팀을 추슬러 허울뿐인 이름이 아니라 옛 호랑이의 좋은 전통을 계승해야 할 것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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