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어데 가노? 좀 있으면 경기 시작하는데….”
“1군 등록 선수도 아닌데 경기가 어데 있습니까. PC방 가는 길입니다.”
순간 ‘아차’ 하는 마음. 괜스레 말을 꺼냈다 자존심만 긁은 셈. 그랬다. 1990년대만 해도 거리에 나타나면 사인 공세를 받았을 문동환은 그렇게 부산 팬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었다. 얼마나 답답했으면 PC방이나 간다고 그럴까.
기자가 기억하는 문동환은 실로 대단한 선수였다. 한 학년 밑에 임선동 손경수 조성민 박찬호 차명주(당시 서열은 이랬다) 등 쟁쟁한 92학번 후배들이 있었지만 최소한 대학 시절엔 문동환에게 고개를 숙여야 했다. 대표팀 에이스를 한 번도 놓치지 않은 그는 91학번 트리오인 위재영 안희봉에 비해서도 항상 한 걸음 앞서 있었다.
그가 1994년 니카라과 세계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숙적 일본에 완봉승을 거두는 것을 현장에서 직접 봤을 때의 흥분이란….
문동환은 실업 현대 피닉스로 먼저 갔다가 2년 후인 1997년 롯데에 입단해서도 빼어난 실력을 뽐냈다. 1999년에는 17승으로 다승 3위까지 올랐다.
하지만 문동환은 이후 3번이나 팔꿈치 부상으로 수술대에 오르는 시련을 겪었다. 2003년에는 단 한 번도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고 급기야는 그해 겨울 자유계약선수 정수근의 보상선수로 두산행이 결정됐다가 불과 몇 시간 만에 한화로 재트레이드되는 수모까지 겪었다. 지난해에는 15패(4승)를 당해 최다패 투수의 불명예도 안았다.
이런 그가 지난 주말 10승 달성에 성공했다. 1999년 이후 무려 6년 만의 쾌거. 호기심에 연감을 뒤져보니 역대 타이기록이었다. 이제는 인기 연예인이 된 강병규가 1993년 10승에서 1999년 13승을 올린 게 처음. 정명원이 1991년 12승 이후 7년 만인 1998년 14승을 올렸지만 이는 선발과 마무리를 오간 때문. 재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드라마보다 감동적인 오뚝이 인생이 있기에 팬들은 마냥 즐거울 뿐이다.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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