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프리즘]선수 마음 녹인 감독의 ‘방귀 한방’

  • 입력 2005년 9월 23일 03시 11분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신한은행 농구팀 이영주 감독. 동아일보 자료 사진
경기 중 선수들에게 작전 지시를 하는 신한은행 농구팀 이영주 감독. 동아일보 자료 사진
브라질 축구 선수들은 공을 쉽게 찬다. 다리의 백스윙없이 발목의 스냅 만으로 툭툭 차는데도 공이 빠르고 정확하다. 상대 수비진의 무지막지한 태클이 들어와도 슛 자세는 늘 연체동물처럼 부드럽다.

미국프로농구(NBA)의 흑인 선수들도 그렇다. 빠른 스피드와 격렬한 몸싸움 속에서도 몸의 움직임이 서커스 곡예단같다. 마지막 슛 폼은 바람 앞의 대나무처럼 능청스럽다.

그렇다. 슛할 때 힘이 들어가면 망치기 십상이다. 축구 선수가 슛할 때 발목에 힘이 들어가면 ‘똥볼’이 되고 만다. 농구 선수가 어깨에 힘이 들어간 채 슛을 하면 대부분 볼이 림을 맞고 튀어나온다.

14일 춘천 우리은행과 안산 신한은행의 2005여자프로농구 여름리그 챔피언결정전 1차전. 경기를 앞두고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우리은행의 승리를 점쳤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은행엔 백전노장 김영옥(168cm)을 비롯해 김계령(190cm) 이종애(186cm) 홍현희(191cm) 같은 장신 스타들이 즐비하다. 지난해 여름과 겨울리그에서 연거푸 우승을 할 정도로 경험도 풍부하다.

신한은행엔 ‘미시 노장’ 전주원(33·176cm) 정도가 눈에 띌 뿐 진미정(173cm) 선수진(180cm) 강지숙(198cm) 등은 무명이나 마찬가지다. 더구나 신한은행은 지난 겨울리그 꼴찌 팀. 그런데도 신한은행은 1차전에서 우리은행을 68-56의 큰 점수차로 이기더니 그 기세를 몰아 3연승으로 우승을 차지해버렸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1차전이 시작되기 직전 신한은행 이영주(39) 감독은 선수들의 얼굴을 보고 “아차, 잘못하다간 경기를 망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에 식은땀이 흘렀다. 선수들이 큰 경기 경험이 거의 없어 너무 긴장했기 때문. 이 감독은 맏언니인 전주원을 불렀다. 그리고 “(진)미정이랑 (선)수진이랑 쟤네들 왜 저렇게 비장하고 심각해? 괜찮아, 편안한 마음으로 웃으라고 해”라고 다독였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긴장이 풀어질 리 만무. 이 감독은 선수들을 라커룸에 모아놓고 부드럽게 타일렀다.

“우리은행이 우리보다 나은 게 사실이야. 안 되는 플레이를 무리하게 하다간 게임이 어그러질 수도 있어. 마음을 비워. 이기고 지는 것 생각하지 말고 마음껏 나가 놀아. 하고 싶은 대로 플레이 해.”

선수들의 굳은 얼굴이 하나 둘 풀어지는 게 보였다. 그때 마침 누군가 “뿌웅∼” 하고 방귀를 크게 뀌었다. 갑작스러운 ‘대포 방귀’ 소리에 한순간 멍했던 선수들이 동시에 “깔깔깔” 배꼽을 잡고 웃었다. 이 감독의 방귀였다. 이 감독은 1차전을 승리한 후 “선수들이 좀 웃으라고 일부러 더 크게 뀌었다”고 말했다.

감꽃 피면 감꽃 냄새/밤꽃 피면 밤꽃 냄새/누가 누가 방귀 뀌었냐/방귀 냄새(김용택 ‘우리 교실’)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 물보라처럼 퍼지는 웃음 물결이 눈에 선하다. 신한은행 선수들의 굳었던 마음도 아카시아 향기처럼 환하게 밝아졌다.

이날 신한은행의 필드 골 성공률은 47.9%. 이에 비해 우리은행은 38.8%에 불과했다. 3점 슛은 신한은행이 9개 중 4개를 성공시켰으나(44%) 우리은행은 15개를 던져 1개만 림을 통과했다(6.6%). 신한은행 선수들은 게임을 즐겼고 우리은행 선수들은 힘이 너무 들어갔다.

감독의 ‘방귀 한방’이 얼음장 같은 선수들의 마음을 봄눈처럼 녹여 ‘신바람’을 불러 일으킨 것이다.

유머가 넘치는 리더는 조개껍데기처럼 굳어버린 조직에 붉은 꽃을 피운다.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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