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하산 타고 내려온 기분이에요. 팀 감독도 안 해 본 나에게 덜컥 대표팀을 맡기다니…. 하지만 그만큼 기대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어요? 대표팀 감독은 평생 꿈이었어요. 꼭 일 한번 저질러 보고 싶습니다.”
박찬숙은 1975년 16세인 숭의여고 1학년 때 대표팀에 발탁됐다. 그 후 1985년 결혼과 함께 은퇴할 때까지 1978년 아시아농구선수권 우승, 1979년 세계농구선수권 준우승,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 등을 이끌며 ‘스타의 길’만 밟았다.
하지만 감독은 스타뿐만 아니라 후보 선수들의 마음도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고민이 되지만 그런 문제는 이영주(39·신한은행 감독) 코치와 상의해서 하면 잘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감독이라는 자리가 원래 속이 썩고 또 썩어도 계속 참아야 하는 자리인데 그러다 보면 아무래도 좀 늙을 것 같아 그게 걱정입니다. 하하하.”
그는 성격이 직선적이고 낙천적이다. 뭐든 일단 부닥치고 본다. 자꾸 소극적으로 움츠러드는 선수가 가장 싫다. 대신 입맛이 까다롭다. 현역시절 해외원정 땐 반드시 고추장과 김치를 싸가지고 다녀야 했고 밥도 숙소에서 해먹었을 정도다.
“제 임기는 마카오 동아시아경기(10월 29일∼11월 6일)까지입니다. 어쩌면 단막극으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잘해야 여자 후배들이 제 뒤를 잇지 않겠습니까? 팀 구성은 멀리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내다보고 젊은 선수들로 꾸릴 생각입니다. 1.5군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똘똘 뭉친다면 불가능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선수들과 합숙하며 훈련할 예정. 그래야 ‘따끈따끈한 감독’이 될 수 있다는 소신이다. 무역업을 하는 남편 서제석(52) 씨와 대학생 딸(20), 그리고 초등학생 막내아들(10)도 ‘엄마의 장기 외박’을 박수로 양해해 줬다. 그는 숭의초등학교 5학년 때 단지 키(170cm)가 크다는 이유로 농구를 시작했다. 원래 꿈은 헤어디자이너. 좋아하는 노래는 이범용 한명훈의 ‘꿈의 대화’와 이창용의 ‘당신이 최고야’. 서른아홉에 배운 술은 소주 1병 정도가 적정량.
“가끔 코트에 서보면 마음은 훨훨 나는데 몸이 자꾸 뒤로 가더라고요. 이젠 농구보다 옛날 선후배 동료들과 만나 수다 떠는 게 훨씬 재미있고 신나요.”
김화성 스포츠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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