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직전의 수직 벽 15m를 앞두고 머리부터 추락해 60m를 떨어지다 다행히 로프가 끊어지지 않아 수천 m 낭떠러지에 대롱대롱 매달렸다면? 나중에 밝혀진 일이지만 떨어지며 바위에 부딪친 충격으로 4번과 5번 척추 두 마디가 조각이 나는 큰 부상을 입었다면?
게다가 고산 등반이 처음인 데다가 마흔을 바라보는 여자라면 이런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15m의 인공암벽을 오르는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에서 세계 톱 10에 드는 고미영(38·코오롱스포츠 챌린지팀, 청주대 중어중문학과 3년)이 7월 22일 생명을 잃거나 불구가 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동료 김형주(50·코오롱등산학교 강사)와 함께 난봉 드리피카를 세계에서 4번째, 한국 산악인으론 초등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화제다.
비명을 지르며 거꾸로 매달린 고미영은 정신을 차리자마자 밀려오는 통증을 참고 다시 정상을 향해 오르기 시작했고 정상 증거 사진을 찍은 뒤 2박 3일을 기다시피 해서 베이스캠프(4300m)로 귀환했다.
베이스캠프에서 독일 원정팀 의사에게서 진통제 처방과 응급처치를 받은 그가 귀국한 때는 8월 9일. 척추 두 마디가 조각나 수술이 불가피하다는 진단이 나왔지만 고미영은 “통증이 심하지 않다”며 자칫 선수생명이 끝날 수 있는 수술을 마다했다. 담당의사는 통증이 별로라는 말에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남자 보디빌딩 선수 못지않은 그의 근육들을 살펴본 뒤에 “운동을 워낙 많이 해 척추 옆 근육들이 잘 잡아줘서 그런 것 같다”며 수긍했다. 그리고 투병생활.
6일 완치됐다는 통보를 받고 58일간 지냈던 병원 문을 박차고 나온 고미영은 곧장 헬스클럽으로 달려갔다. 이달 울산에서 열리는 전국체전 스포츠클라이밍 종목에 참가하기 위해 몸 만들기에 나선 것.
그는 “고산 등반은 처음이었는데 함께 간 동료들이 저보고 고소증세도 보이지 않고 체질이라고 했다. 엄청 고생했지만 즐겁게 잘 다녀왔다는 추억만 간직할 것”이라며 “기회가 닿는 대로 또 높은 봉우리를 찾아 떠나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정말 ‘철의 여인’이 따로 없다.
전창 기자 j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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