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환이 한국시리즈 최우수선수(MVP)가 된 것은 그의 작품이다. 그는 4차전에 앞서 “오승환에게 3이닝 마무리를 맡겨서라도 세이브를 챙겨 주겠다”고 운을 뗐다. 또 “오승환을 우승 헹가래 투수로 만들어 주고 싶다”고도 했다.
문제는 4차전이 10 대 1로 싱겁게 끝나버린 것. 너무 큰 점수차 탓에 오승환은 2이닝만 던져 세이브를 추가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많은 기자는 ‘선심(宣心)’을 저버리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냉정해져 보자. 오승환은 3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의 철벽 마무리를 했지만 드러난 성적만 보면 1구원승 1세이브가 고작이다. 이는 역대 10명의 투수 MVP 가운데 가장 저조하다.
반면 김재걸은 12타수 6안타에 0.648의 출루율을 기록했다. 마운드엔 1, 4차전 승리투수 하리칼라도 있었다. 또한 4경기에 모두 등판해 5이닝 무실점 3홀드를 기록한 권오준도 있다.
다음 주 초면 시즌 MVP와 신인왕 투표가 열린다. 오승환은 여기서도 강력한 후보인 모양이다. 신인왕은 떼어 놓은 당상이니 잘하면 사상 최초의 트리플 크라운 수상자가 될 기세다.
하지만 과연 오승환이 그럴 자격이 있을까. 그의 시즌 성적은 10승 1패 11홀드 16세이브. 누군가는 이를 두고 트리플 더블이라고 했지만 이는 족보에는 없는 기록.
게다가 그가 승률왕이 된 것은 시즌 최종전인 지난달 28일 한화전에서 4회에 조기 등판해 10승을 채운 덕분이다. 1-1로 맞선 상황이긴 하지만 마무리 투수가 4회에 나간 것은 지극히 비정상적인 투수 운용. 그럼에도 이 경기가 승수 밀어주기 비난을 면한 것은 선 감독의 맨 파워가 발휘된 때문이다.
이 자리에서 오승환을 깎아내리려는 뜻은 전혀 없다. 선 감독이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오승환은 올해 최고의 투수”이고 투수 선동렬의 진정한 후계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기록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전반기 오승환이 중간계투에 머물러 있을 때 롯데 손민한, 두산 정재훈, 현대 서튼, LG 이병규는 각각 팀의 핵심인 선발, 마무리, 중심타자의 역할을 맡아 눈부신 성적을 올렸다.
모쪼록 이번만큼은 제대로 된 선택이 이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장환수 기자 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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