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운동선수 "매일 안맞길 기도"…부끄러운 '스포츠 한국'

  • 입력 2005년 11월 2일 03시 08분


“아침에 눈을 뜨면 두려워요. 제발 오늘은 안 맞고 무사히 넘어갔으면 하고 기도해요.”(19·여·대표 선수)

“제가 보고 있는데도 우리 애한테 욕을 하고 귀싸대기를 갈겼어요. 귀가 찢어졌는데 가슴이 미어지더군요.”(중등 학부모)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 하지만 그 주인공인 운동선수의 인권은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려 여전히 열악한 상황을 면치 못하고 있다. 본보가 1일 입수한 국민체육진흥공단 체육과학연구원의 ‘운동선수 구타실태조사 및 근절 방안’(책임연구원 고은하·高恩夏 박사·35)에 대한 보고서는 2008 베이징 올림픽 메달 가능 종목 등 20종목의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 대표급 선수, 학부모, 지도자 44명을 직접 인터뷰해 작성한 것. 이 보고서에 따르면 지도자와 선배는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구타를 일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 박사는 “선수들은 처음엔 아픔과 모멸감을 느끼지만 시간이 가면서 익숙해지고 구타에 순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된다”고 말했다.

▽구타 사례들

#1=“코치 선생님이 술에 만취한 채 숙소에 들어온 뒤 마구 때렸어요. 다음 날 간밤의 사태에 대해 숙소 주인이 물어보니까 자기가 한 일을 모른 채 ‘내가 그랬어?’라고 말하더라고요.”(24·남·대표 선수)

#2=“합숙소 청소가 잘 안 돼 있다든지 코치 선생님한테 꾸지람 들으면 선배들이 짜증을 내면서 상습적으로 때렸어요.”(24·남·대표선수)

#3=“구둣발에 조인트 까이고 뺨을 맞아 뒤로 넘어진 저를 발로 막 밟았어요. 한 20분은 맞은 것 같아요.”(26·남·대표 선수)

▽구타 근절책

이 보고서는 운동선수 인권 보호를 위해 구타에 대한 구체적인 처벌 규정과 감시, 감독기구를 만드는 게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밝혔다. 고 박사는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은 지도자 교육이다. 일반적으로 능력 없는 감독이 주로 때린다. 안 때리고도 성적을 낼 수 있는 효과적인 지도법을 개발, 보급해야 한다”고 말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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